[뉴스토마토 손지연기자]
올해 초부터 시작된 물가상승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물가가 안정될 것이란 정부의 예상은 빗나가고 고물가는 하반기를 넘어 내년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집값과 전세값 불안에다 물가상승세가 계속되자 국민들의 일상생활 양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주부들의 장바구니 구매패턴부터 직장인들의 소비, 부모들의 교육비 지출은 물론, 젊은이들의 결혼, 내집장만 등의 패턴도 예전과 달라지는 양상이다. 고물가 시대에 달라지는 국민들의 라이프패턴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결혼은 인생의 2막'이라고 하지만, 최근의 고물가는 젊은층의 결혼 계획까지 바꿔놓고 있다.
높아진 집값·전셋값 때문에 젊은 남성들은 대표적인 결혼 혼수품목인 신혼집 마련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혼 여성들은 비싸진 혼수품 마련 걱정에다, 결혼 후 맞벌이에 따른 출산과 양육비 걱정으로 결혼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
◇ 감소하는 혼인건수..고물가 영향 탓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혼인건수는 2만3500건으로 1년 전보다 1100건(4.5%)이 감소했다. 1월부터 7월까지 혼인건수도 한해 전보다 0.8% 줄어들었다.
2008년 조회금 대구대 가정복지학과 교수 등이 작성한 '결혼지연요인에 대한 사회적 대응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 남성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많은 빈도수를 기록한 것은 '집이 마련되지 않아서', '소득이 적어서', '결혼비용이 마련되지 않아서', '실업 상태여서' 등이었다.
또 남자는 '집' 때문에, 여자는 결혼 이후 자녀양육을 위한 '교육비' 걱정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결혼이 지연되는 주된 이유가 경제적 비용과 관련돼 있다.
이 보고서에서 인터뷰한 한 사례를 보면, 판매서비스직에 종사한다는 한 30대 중반 남성은 "하다 못해 전셋방이라도 갖춰놓고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며 "연애했는데 (결혼한 뒤) 사글세 살자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집마련이 쉽지 않은 직장인들에게 요즘처럼 집값·전셋값이 치솟으면 결혼의 꿈은 더욱더 멀어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전셋집 마련 어려워 결혼시기 잡기 '고민'
한국의 올해 상반기 집세 상승률은 3.3%로, OECD 29개 국가(미집계국 제외) 중 3위를 기록했으며 OECD 평균 집세 상승률(1.8%)을 크게 상회했다.
소비자물가에서 집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9.8%로 OECD 국가 중 세 번째 수준이다. OECD 29개국 평균(5.0%)의 두 배에 가깝다.
특히, 최근의 전세난은 예비부부의 결혼시기에 영향을 미친다.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보니 결혼 시기를 원하는 대로 결정하기도 어렵다.
예전에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1순위가 예식장을 잡는 일이었다면, 요즘엔 전셋집 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부동산 업체인 에이플러스리얼티 조민이 팀장은 "전세를 찾는 기간이 예전보다 길어졌다"며 "예전에는 결혼 2,3개월 전부터 집을 구하러 다녔다면, 최근엔 최소 6개월 전부터 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을 늦추는 사례도 상당수라는 것이 조 팀장의 설명이다.
◇ 혼수물가도 상승.."줄이고 깎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혼수용품이라 할 수 있는 가구, 침구·직물, 가정용 기구, 주방용품, 가사소모품, 항공 및 여객선 이용료, 이미용 서비스, 개인용품 등 8개 부문의 물가상승률 평균이 지난 9월 9.2%에 달했다. 지난해의 9월 3.7%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장롱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9월 4%에서 올해 9월 10.5%를 기록했고, ▲ 솥(0.1%→6.1%) ▲ 밀폐용기(-4.2%→14.1%) ▲ 부엌용용구(15.9%→46.4%) ▲ 세탁비누(7.3%→22.9%) ▲ 미용료(3.5%→6.4%) ▲ 국내항공료(3.2%→12.1%) ▲ 금반지(19.4%→36.2%) ▲ 핸드백(2.7%→11.5%) 등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김나라 한국웨딩플래너협회 웨딩플래너는 "고물가로 혼수 외에도 예물과 예단을 많이 줄인다"며 "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는 예비신부가 늘었고, 웨딩촬영을 셀프 웨딩촬영으로 대체해 당사자끼리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항공료가 많이 오르면서 신혼여행지를 조정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덧붙였다.
◇ 결혼 후에는 高교육료 부담..'커리어 단절'도 고민
여자들에게는 높아진 혼수비용보다도 결혼 이후 감당해야 하는 교육비와 양육비가 더 부담이다.
지난 9월 고등학교 교과서 가격상승률은 전년동기대비 35.1%였다. 미술학원비는 작년 9월 3.8%에서 지난 9월 5.6%로 상승했고, 사립대학교와 사립대학원 납입금은 각각 1.0%에서 1.6%로, 1.8%에서 2.4%로 올랐다.
이밖에 ▲ 외국어학원비(3.7%→4.8%) ▲ 이러닝(e-Learning) 이용료(0%→4.3%) ▲ 초등학교 참고서(7.9%→7.0%) ▲ 대입학원비(4.9%→4.4%) 등도 매년 일정 수준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당장 중고등학교와 대학 교육비가 들어가지 않아도 미혼 젊은층들에게 높은 교육비 부담은 결혼을 꺼리게 되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결혼 후 '출산→양육→교육'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부담을 일단 회피하고 싶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출산은 커리어 단절로 연결된다. 결국, 고물가 시대에 출산을 겪음으로써 노동활동을 통한 가계보탬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기혼여성 경력단절의 경제적 효과와 직업선호' 보고서에 따르면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한 여성보다 평균 43만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기업에 재직 중인 미혼의 이미나(가명ㆍ30)씨는 "지금 아이를 낳고 키울려면 앞으로 내가 몇 년을 더 일해야 할지 모른다"며 "20년을 벌어서 50년을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내 인생을 스스로 부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사면초가에 빠진 미혼남녀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자가거주 비중은 2008년 56.4%에서 2010년 54.3%로, 전세비중은 22.3%에서 21.7%로 각각 줄었다.
반면 월세 비중은 2008년 16.7%에서 2010년 20.1%로 3.4%포인트 늘었다. 증감율로 따지면, 26.9%나 늘어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주거점유형태 중 자가거주 비중이 축소된 반면, 월세를 중심으로 임대가구가 늘어나면서 집세가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전세 공급부족상태가 지속되면서 전세 오름세도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 9월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품목별 물가구조의 특징과 대응과제' 보고서를 통해 임대주택시장의 대부분을 민간에 의존하는 등 공공부문의 역할이 미흡해 집세 상승기에 가격 상승을 완충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프랑스 등의 자가주택 거주 비중이 70% 내외에 달하고, 나머지 임차가구도 대부분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남자들은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집을 마련하는 것도 부담이고, 시기를 더 늦추면 가격이 더 오를까봐 불안한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혼인에 의한 출산이 보편적인 우리나라에서 금세 닥쳐올 교육물가의 부담은 결혼을 망설이게 되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결혼을 늦추자니 첫아이 출산이 점점 늦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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