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대법원이 속을 태우고 있다.
지난 18일 박시환, 김지형 두 대법관이 퇴임했지만 후임자인 김용덕(54·사법연수원12기), 박보영 후보자(50·16기)가 아직 취임하지 못하면서 대법원 재판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덕, 박보영 두 후보자는 21일 대법관으로 취임할 예정이었으나, 한·미 FTA 비준에 대한 의견차로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 임명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지난 6월28일 인사청문회를 마쳤으나 벌써 5개월 가까이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않아 헌법재판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사법부의 공백상태가 이어지자 국회가 사법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연구관 출신인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정치적 문제에 관한 힘겨루기로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기능에 지장이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하면서 "인사청문회법 등 관련 법규정을 개정해 임명동의안 처리시한을 법으로 규정하는 게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정치권이 사법부의 공석상태를 방지하기 위한 협조적 자세를 보이는 것 외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다만, 법적인 차원에서는 헌법개정이나 법개정 등을 통해 지금과 같이 공백이 생길 경우에는 후임 대법관이나 재판관이 취임하기 전까지 임무를 대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전임자가 후임자 취임시까지 임무를 대행하는 것은 외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의 임기를 헌법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법으로 연장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긴급한 상황 하에서 법의 흠결을 보충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또 후임자 임명 제청을 전임자 퇴임일에 너무 임박해서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통상 후임자 제청을 전임자 퇴임일 2~3개월 전에 하는데 이건 부결될 사례를 전제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하고 "사법부는 행정기관이 아니어서 레임덕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 부결을 전제로 해서 최소한 6개월 전에 제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적인 강제 보다는 국회의원들 스스로 자각해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방희선 동국대 교수는 "외국에서도 이런 일은 전례가 아주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의식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교수는 또 "이번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고유권한인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정치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떠나 의무적인 사항을 이행하는 것은 상식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해서 법을 만들어 임명동의안 처리를 강제할 수도 없는 문제"라며 "임명동의안 처리는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민주적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니 만큼 이를 소홀히 한다면 국민들로서는 선거로 심판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당사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속을 태우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후보자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임명동의안이 처리되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며 "조속히 처리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도 "외국의 입법예 등 여러 대안이 있을 수 있지만 섣불리 말할 성격은 아니다"면서 다만, 후임재판관 임명문제가 빨리 마무리 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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