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지휘체계'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민간인 불법사찰의 거대한 실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의 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측근들이 '친위조직'을 만들어 민주국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불법사찰을 저지른 '희대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되어 가고 있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그 증거를 은폐하거나, 끊임없이 실체규명을 방해한 대목에서는 닉슨 대통령의 하야로 끝난 '워터게이트' 사건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제 여론의 관심은 검찰이 이런 불법행위들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지에 모아지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형사3부장)은 17일 핵심인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소환해 조사하는 한편, 수사팀을 대거 보강해 사건의 몸통을 향한 수사에 발을 내딛었다.
◇MB 친위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탄생
MB 정부 당시 만들어진 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나섰던 盧정권 사람들에 대한 감찰업무를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5월쯤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본격화되자 당시 청와대에서는 정보부재와 상황판단 미숙으로 사태를 키웠다는 책임론이 대두됐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같은 해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비선 조직을 만들었다. 이후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이하 1과 7개팀이 신설, 각 부처에서 파견된 20여명으로 시작해 최대 40여명의 직원이 할당돼 운영됐다.
당시 누구의 아이디어로 이 조직을 신설했는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지만, 김경동 전 총리실 주무관의 USB에서 2008년 8월28일 작성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문건이 그 단서를 제공한다. 이 문건에는 지원관실의 보고라인에 대해 일반 사항은 총리에게, 특명 사항은 청와대 비선을 거쳐 대통령실장에게 보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대통령 비방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사찰받았다는 사건이 알려진 직후, 2010년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지금의 공직복무관리관실로 개편됐다. 당시 42명이던 소속 인원은 33명으로 줄었다
◇반MB 인사 마구잡이 사찰
지원관실은 지난 4년여간 현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인들을 표적사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진경락 전 지원관실 총괄과장 여동생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400여건이 담긴 사찰 관련 자료를 입수해 분석 중이다.
진 전 과장이 보관했던 자료에는 정두언.현기환 새누리당 의원, 백원우.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야당 의원들에 대해선 후원회, 지원그룹 등의 실체를 파악해 보고하라는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두언 의원의 경우 현 정부 초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등에 대해서 비판을 제기했다. 백원우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지칭하며 소란을 피웠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현기환 의원은 새누리당 소장파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회원으로 활동했다.
또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 대표 등의 이름이 문건에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불법사찰 사례로 판단하고, 분석 중인 사찰 사례만 해도 수십건에 이른다.
◇총리에게도 비밀, 절대충성 'VIP'께만 보고
문제의 문건에 따르면 지원관실은 盧정부 인사들의 퇴출과 이 대통령 하명 사건 처리 등을 목적으로 하는 비선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건에는 '盧정권 인사들의 음성적 저항과 일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으로 인해 VIP의 국정수행에 차질이 생겨,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을 위해 설립됐다'고 적시됐다.
노무현 정부 코드 인사들에 대한 퇴출 내용도 등장한다. '전 정권 말기에 대못질한 코드인사 중 MB 정책기조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인사에게 사표제출 유도', '2008년 9월 현재 퇴출 대상 공기업 임원은 39명'이라고 적혀 있다.
'VIP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청와대)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로 한다', 'VIP 보고사항은 공직윤리지원관이 BH 공직기강팀, 고용노사비서관과 조율한 뒤 대통령실장께 보고'라는 문건 내용을 보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사찰내용을 보고받고 중간 보고라인인 박 전 차관을 거쳐 이 대통령에게 직보했을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불법사찰 탄로나자 '대포폰' 등 추가범죄
불법사찰을 은폐하려는 제2의 범죄수법에 '대포폰'까지 활용된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검찰은 최종석(구속기소) 전 청와대 행정관의 차명폰 통화기록 분석을 통해 박 전 차관이 2010년 7월7일 총리실 국무차장 시절 비서관인 이모(총리실 연구지원팀장) 서기관의 차명폰으로 최 전 행정관과 통화한 기록을 확인했다.
2010년 7월7일은 최 전 행정관이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점검1팀과 진경락 기획총괄과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기를 지시한 당일이어서 박 전 차관이 이 대포폰으로 은폐 대책을 논의했을 것이란 게 검찰의 판단이다.
당시 서유열 KT 사장은 이 전 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KT 대리점 사장의 자녀 명의로 대포폰을 만들어줬고, 이 전 비서관은 최 전 행정관을 통해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넸다.
민간인 사찰자료 삭제·은폐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전 비서관도 2010년 7월초 사찰 증거인멸과정에서 서 사장을 통해 차명폰을 개설, 관련자들과 증거인멸 당시 연락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마비용 출처는, 대통령 특수활동비?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침묵의 대가로 장 전 주무관이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에게서 받은 5000만원의 출처를 추적 중인 검찰의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류 전 관리관은 돈의 출처에 대해 "숨진 장인이 마련해준 것"이라며 함구하고 있다. 앞서 류 전 관리관은 1차 소환 당시 해당 돈의 출처에 대해 지인이 준 것이라고 진술했었다.
검찰은 류 전 관리관이 5000만원의 출처를 '숨진 장인'에게 떠넘기는 진술은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류 전 관리관과 장 비서관 본인, 그리고 가족 계좌 등을 광범위하게 추적하고, 5000만원 전달이 이뤄진 즈음에 청와대 주변 시중은행 지점에서 거액을 빼낸 인출자 명단도 훑었지만 아직 뚜렷한 단서를 포착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이 돈이 청와대 즉, 대통령 특수활동비에서 지출됐을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별한 업무 수행에 사용하는 예산인 대통령 특수활동비는 110억원 가량이며,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모르쇠 일관하는 진짜 몸통
청와대의 '핵심'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이 류 전 관리관을 시켜 자기에게 5000만원을 주도록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장 비서관은 "돈을 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앞서 1차 수사팀은 총리실 직원 3명이 공모한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이번 재수사에서는 '지원관실의 업무지휘체계' 문건이 공개되고 중심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박 전 차관까지 소환조사를 받고 있어 진짜 몸통은 이 대통령이란 추측이 힘을 얻고 있다.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증거인멸의 실체를 파악하는 한편, 증거인멸을 지시한 윗선의 배후세력을 밝혀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1차 수사 당시 '축소·은폐 의혹'이 있었는지 여부까지 판단해야 하는 점은 재수사팀에겐 부담이다.
한동안 답보상태에 머물러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박 전 차관 등의 소환 조사로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검찰 수사는 이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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