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신파극이나 막장드라마의 소재나 될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애정이나 치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실망스럽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코믹한 이야기여서 이 이야기를 할까말까 고민도 깊었습니다.
고생하는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들의 일상이 이다지도 애처로워 보인 것은 처음있는 일이어서 독자들과 우러러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대한민국 장관`의 일상을 함께 나누면서 느끼고자 합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생활권에서 세종시로 정부청사가 이전한 후 장관들은 그야말로 '두문분출'입니다.
2시간 전까지만 해도 세종청사에서 있던 장관이 어느 새 서울로 올라와 회의에 참석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정부부처 장관이나 위원장 등은 국회·중앙청사 일정뿐 아니라 외부 행사 등으로 인해 일주일의 반은 세종청사에서, 나머지 반은 서울에서 보냅니다.
신속한 이동이 필수인만큼 장관들은 보통 전용 봉고차를 타고 이동하는데요. 장관들 나이는 55~66세로 다들 '허리 통증이 말도 못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처보다 좀 더 일찍 내려 온 A장관은 '봉고차보다 KTX가 허리가 덜 아프다'는 애정어린 조언도 해줍니다.
그나마 장관들의 사정은 나은 편입니다. 장관이니 관용차가 현관이나 역앞에서 대기하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만 직원들은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타고 KTX역으로 가서 또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가야하기 때문에 그나마 장관은 나은 편이죠.
장관들 역시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KTX를 이용하고 싶지만 시간이 잘 맞지 않아 문제입니다. 일정이 많은 날은 세종청사에 있다가 서울 행사에 참여한 후 다시 세종청사로 가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B장관은 이 같은 비효율 때문에 길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많은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습니다.
B장관은 "국무회의가 9시10분쯤 끝났는데 바로 KTX가 없더라. 그래서 9시50분 차를 예매한 후 대합실에서 대기했다. 시간이 딱 맞으면 1시간30분이면 오는데 시간이 맞지 않으면 왕복 4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취재를 위해 세종청사를 왔다갔다 하는 젊은 기자들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오고 가기 힘들다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마당에 상대적으로 고령인 장관들을 어떨까 싶습니다.
장관들이 서울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들과 떨어져 세종청사에서 지낼 때는 여느 대학 자취생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이 어두운 아파트에 들어가 적막 속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본의 아니게 기러기 아빠가 돼 버린 장관들은 광고를 통해 상품명만 알고 있던 일회용 밥이 어느덧 일용할 양식이 되었습니다.
자녀 때문에 아내와 떨어져 혼자 세종시에 거주하고 있는 A장관은 "아내가 내려와서 밥을 해놓고 가는데 5일이 지나면 변색되더라"면서 "일회용 밥이 간편하고 좋더라"고 일회용 밥에 대해 예찬하는 모습이 몹시 안쓰러워 집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온 학생들의 엄마가 해주듯 A장관의 아내도 오래도록 먹을 수 있도록 많은 양의 찌개를 끓인다고 합니다. 그 찌개를 조금식 나눠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그때 그때 냄비에 올려서 먹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데도 그걸 해먹을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부족합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은 강렬하지만 하루에도 두세번씩 서울과 세종시를 왕복한 몸과 업무에 대한 정리로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취미 생활은 어느덧 강건너 불구경이 됐습니다. 등산을 좋아해 청계산·북한산 등을 즐겨 찾았지만 세종청사에서는 근처 강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고 있을 뿐입니다.
비단 이는 A장관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세종청사에 내려간 다른 부처 장관들뿐 아니라 공무원들 모두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이미 세종청사로 내려오게 됐으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만은 막아줘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또 세종청사와 서울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하지 않고 진득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미 지적이 아닙니다. `소원`이 된지 오랩니다. 그들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가족통일.
공무원들은 국가의 일꾼입니다. 일꾼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본권인 의·식·주에 대한 고민 없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이 전제돼야 합니다.
장관을 자취생으로 만든 세종시, 가족과 생이별하게 만든 세종시, 먹고 살기 힘든 세종시 등의 오명을 벗기 위한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지 않고선 세종시를 향한 공무원들의 심리적인 거리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서울에 있던 정부청사가 과천으로 갈 때도 적지 않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번 세종청사도 시간이 흐르면 하나 둘씩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국회와 청와대만 세종시로 가면 된다"는 말이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공무원과 기자들, 그리고 국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지금 세종시의 현실을.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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