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물을 가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시민기획위원회'가 후원하는 노 대통령 추모 헌정시집이 다음달 15일 발간된다.
'시민광장'이 주관하는 헌정시집에 수록될 시들은 지난 15일 마감됐다. 등단작가들을 비롯해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180편이 넘는 작품들이 모집됐다.
이번 헌정시집에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리며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시도 수록될 예정이다.
지난 2월19일 트위터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는 짧은 글을 남기고 '지식소매상'으로 돌아간 유 전 장관은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라는 제목의 시를 노 전 대통령에게 헌정했다.
유 전 장관은 "수백 대 카메라가 마치 총구처럼 겨누고 있는 봉하마을 사저에서 정치의 야수성과 정치인생의 비루함에 대해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물을 가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그러나 "확신 가득한 말이 아니었어"라며 "그 분노와 회한을 함께 느꼈던 나의 서글픈 독백이었을 뿐"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노무현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작들을 한 편씩 공개하고 있다. 15일에는 안도현 시인의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이라는 제목의 시가 공개됐다.
재단은 "헌정시집이 발간된 뒤 시낭송회와 시화전 등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의미를 나누고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헌정시집을 주관한 '시민광장'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신분과 계급 등은 평등에 위배가 된다는 정신을 남겼기에 일반 시민들의 시도 평등하게 싣도록 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유 전 장관이 노 전 대통령에게 헌정한 '대답하지 못한 질문'의 전문이다.
대답하지 못한 질문
유시민(작가.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 사는 세상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경찰서 뒷골목
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
솔직한 말이 아니었어
저렴한 훈계와 눈먼 오해를 견뎌야 했던
그 사람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싶었을 뿐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개인적으로 욕을 먹을지라도
정치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권력의 반을 버려서 선거제도를 바꿀 수만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
대연정 제안으로 사방 욕을 듣던 날
청와대 천정 높은 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국민이 원하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시지요
정직한 말이 아니었어
진흙투성이 되어 역사의 수레를 끄는 위인이 아니라
작아도 확실한 성취의 기쁨에 웃는 그 사람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었을 뿐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만 같소
정치의 목적이 뭐요
보통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주는 것 아니오
그런데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 가족의 삶조차 지켜주지 못하니
도대체 정치를 위해서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이요
수백 대 카메라가 마치 총구처럼 겨누고 있는 봉하마을 사저에서
정치의 야수성과 정치인생의 비루함에 대해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
물을 가른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확신 가득한 말이 아니었어
그 분노와 회환을 함께 느꼈던 나의
서글픈 독백이었을 뿐
그는 떠났고
사람 사는 세상은 멀고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거기 있는데
마음의 거처를 빼앗긴 나는
새들마저 떠나버린 들녘에 앉아
저물어 가는 서산 너머
무겁게 드리운 먹구름을 본다
내일은 밝은 해가 뜨려나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나는
아직 대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안고
욕망과 욕망이
분노와 맹신이 부딛치는 소리를 들으며
흙먼지 날리는 세상의 문턱에 서성인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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