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제16~17대 국회의원. 집권여당 최고위원.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참여당 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지난달 19일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을 마지막으로 정치권을 떠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앞에 달렸던 직함들이다.
그런 그가 '자유인의 서재 대표'라는 새로운 명함과 함께 '유시민 선생'으로 돌아왔다.
지식소매상으로 복귀한 유 전 장관이 내놓은 자전적 에세이 '어떻게 살 것인가'가 18일 현재 <알라딘> 베스트셀러 전체 1위에 올라 있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과 고찰을 옮긴 이 책은 지금까지 유 전 장관이 내놨던 저서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의 지난 글들이 역사와 경제, 사회과학 및 교양을 두루 아울러 전문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재가공해 독자들에게 전달한 것이었다면, 이번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전문적인 내용의 비중이 줄어 아주 쉽게 쓰여진 책이다.
앞서 유 전 장관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으며, '대한민국 개조론'을 통해선 통상·복지국가 비전을 바탕으로 대선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또 '후불제 민주주의'를 통해 헌법과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찬미하고, '국가란 무엇인가'에서는 진보자유주의자가 제안하는 국가관을 피력하며 주제를 가리지 않고 원고지를 종횡무진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러한 전작들과 비교할 때 확실히 결이 다르다. 한층 더 편안해졌고, 힘을 뺀 것이 눈에 띈다. 은퇴를 고심하던 시기에 쓰여졌기 때문일까.
십여 년 전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뛰어들어 국회의원이 된 뒤로 내가 쓴 글은 모두 정치적 자기 검열을 거쳤다.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썼다. 정치적 자기 검열 습관을 벗어던지려고 노력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감추거나 꾸미는 습관과 결별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中에서)
물론 그렇다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마냥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삶과 죽음'이라는 소재는, 그 어떤 주제들보다 독자들에게 전하는 울림이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책의 서두부터 "노는 게 좋다"고 고백하는 유 전 장관은 살면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고 조언한다.
온전히 내 것인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색을 통해 그가 나름 도출한 바람직한(그는 이것이 최선이거나 정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길이다.
아울러 그는 책의 말미에선 '현명하게 지구 행성을 떠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됐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제목이 됐을 거라는 말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10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흔들던 '후단협'의 행태에 격분해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 앞에 다시 서는 심정"으로 절필을 선언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던 유시민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정말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슬픔도 노여움도' 이 책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TV토론에 출연해 "인큐베이터" 발언으로 탄핵을 지지하던 전여옥 전 의원에게 시퍼런 안광을 쏴대던 유 전 장관의 모습 역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선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이 책은 전체적으로 따스한 분위기를 준다.
다만 생활정치인으로 살며 진보정의당 당적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던 유 전 장관은 지역구도에 기생해 거대 양당의 구도가 더욱 공고해진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지난 10년 자유주의 리버럴 세력(혹은 소수 진보정당과의 통합)의 제3세력화를 통한 선거제도 개혁으로 정치지형의 변화를 도모했다 그 꿈을 접은 유 전 장관은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정치시장을 양분해 '과점체제'를 형성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소비자의 선호를 조작하고 지배한다. 안철수 박사는 두 정당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을 결집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치시장의 80퍼센트에 육박하는 두 거대 정당의 시장 점유율을 무너뜨릴 의지나 계획은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 과연 그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아니면 기존 공급자와 손잡고 부분적 혁신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원래 정치 그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어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던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려면 정치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 '아래'와 정치 '너머'의 변화가 없다면 정치도 더는 바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살 것인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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