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이권이나 영향력이 달린 집단이나 개인간의 싸움을 '밥그릇 싸움'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싸움의 결과물이 생사를 판가름짓는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 말이죠.
그런데 세종시에서는 지금 실제 말그대로의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게 진행중입니다.
6000여명의 공무원들과 기자들, 함께 상주하고 있는 가족들까지 상당한 인구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주변식당들의 경쟁이 차츰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종시에 공무원들의 이주가 시작된 지난해말이나 올해 초에는 세종시에서 먹을 수 있는 환경은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황량한 청사 주변의 공사판처럼 식당도 찾기 힘들 정도였죠.
하지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 보니 먹는 문제는 세종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겪는 여러 불편함 중에서 가장 빠르게 해결되고 있습니다.
마땅히 먹을 곳을 찾지 못해 냉동식품으로 아무렇게나 내 놓은 구내식당밥에도 군소리 없이 끼니를 떼웠던 공무원들은 어느새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을 정도로 입맛은 고급스러워(?)졌습니다.
이제는 어디에 어떤 메뉴의 식당이 있는지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 어느 식당은 친절도가 어떻고, 어느 식당은 맛이 괜찮은지 아닌지까지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청사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식당별로 점수표가 공유되고 있기도 한데요.
맛이 괜찮은 식당은 별 세개, 그렇지 않은 식당은 별 두 개나 별 한 개로 표시된 식당별 '별점리스트'를 서로 공유하면서 '잘못된 선택'을 줄이려는 노력까지 하고 있답니다.
별점을 낮게 받은 식당에는 자연스럽게 찾는 고객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세종시 초창기 주던대로 먹던 고객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면서 세종청사 주변 식당들의 고객유치전도 볼만해졌습니다.
차가 없이는 이동하기 어려운 세종시 교통여건을 감안해서 식당에서 직접 승합차를 청사 앞까지 끌고 와서 고객들을 모셔가기도 하구요. 일부 차량 운영이 쉽지 않은 식당들은 몇개의 식당이 연합해서 차량을 공동운영해서라도 고객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식당 사장님이 직접 승용차로 고객을 모시러 오기도 한다죠.
덕분에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청사 주변은 손님을 태우기 위한 식당차량들이 줄을 짓는 광경이 심심찮게 연출되곤 합니다.
식당들의 밥그릇 전쟁이 더욱 치열해진 데에는 멀리서 원정을 온 경쟁자들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과천에서 세종시로 식당을 통째로 옮겨 온 화끈한 사장님들이 바로 이 경쟁자들인데요.
이들 식당은 기획재정부나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등 세종시에 있는 상당수 공무원들이 이주 이전인 과천에서 단골로 찾던 식당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엄마 밥상에 익숙했던 아들 녀석은 장가를 가더라도 아내가 해준 식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죠.
과천에서 지난 2월에 이주 온 한 복집은 그 때의 인기 그대로 단골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예약을 못하면 점심 때 자리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라네요.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역시 과천에서 식당을 통째로 세종시로 옮긴 게장전문점도 단골 공무원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고 합니다. 이 게장집은 과천에서도 환경부 공무원들의 아지트라고 할 정도로 단골장사로 재미를 봤다고 하네요.
없는 살림에 승합차까지 굴려가며 고객을 유치하고 있는 현지식당들은 굴러온 돌들이 손님을 끌어가는 것이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텃새'도 부리곤 한다는데요.
과천에서 내려 온 한 식당은 주차장증축을 하려했던 계획이 최근에 무산됐는데요. 인근식당에서 지역의 단속공무원에게 불법공사 사실을 일러바친 것이 주효했다는 후문입니다.
경쟁자를 누르기 위한 밥그릇 싸움이 너무 과열되는 것은 문제겠지만 어쨌든 선택권이 보다 다양해진 세종시 맛객들은 별점을 매기느라 더 분주해질 것 같네요.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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