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 삼성그룹 최고경영진 2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어지는 이건희 회장의 진노.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 한마디가 삼성의 미래를 결정지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현재, 삼성은 그토록 갈망하던 세계 일류로 자리매김했다. 소니도, 노키아도, 심지어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젖힌 애플조차 삼성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삼성이 감히 넘볼 수조차 없던 그들이었다. 격세지감이다. 그렇게 시대는 변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 보자. 현대왕국에 밀려 만년 2위에 만족해야 했던 절치부심의 시대는 잊혀졌다. 지난해 기준 500대 기업 가운데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액 기준 15.01%, 영업이익 기준 29.84%에 달한다. 순이익의 경우 무려 35.95%의 비중을 차지했다. 삼성 홀로 국가경제를 이끄는 형국이다.
삼성은 이를 신경영의 성과로 해석한다. 본질에는 이건희 회장이 있다. 외형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대전환을 이뤄내기 위해 500억원어치에 달하는 불량품을 불태웠다. '대충대충, 대신 빨리빨리'가 생산현장의 기조였던 90년대 당시 이는 충격이었다. 동시에 디자인의 혁신도 진행됐다.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별 볼일 없던 중저가에서 프리미엄으로 바꿔 놨다.
질적 성장이 담보되면서 외적 성장도 눈부시게 이뤄졌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30조원에 못 미치던 그룹의 총매출은 지난해 380조원으로 13배,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8조원에서 338조원으로 44배 불었다. 총자산은 435조원, 세전이익은 39조1000억원으로 뛰었다.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할 공룡으로 태어났다.
특히
삼성전자(005930)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지난해 삼성전자 나홀로 200조원이 넘는 매출과 30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 1분기 8조7795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데 이어 2분기부터는 마의 장벽으로 여겼던 10조원대 진입마저 유력시되고 있다.
삼성 내에서는 전자, 전자 내에서는 스마트폰에 치중된 편중성이, 국가 전체로는 삼성전자에 쏠린 부의 심화 탓에 여러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성과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삼성전자 착시에 가려 우리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는 경고음에 귀 기울이고 대책을 고민해야 하지만, 이를 삼성의 성과를 깎아내릴 시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삼성의 변화도 요구된다. 재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에 삼성 스스로 한몫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삼성 스스로 권력이 되면서 삼성공화국이 회자됐으며, 그 중심에 이 회장 일가의 부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삼성 X파일, 비자금 조성, 편법 증여 등 우리나라 재벌들이 갖는 부조리한 문제들 대부분이 삼성으로부터 비롯됐다. MB의 이 회장만을 위한 특별사면은 유례 없는 면죄부였다.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용비어천가'가 들린다. 선봉장은 자본권력 앞에 무릎 꿇은 이 나라 정치며, 관료며, 언론이다. 견제와 비판이 부재하면서 삼성도 자기 변화의 동력을 잃었다. 올 들어서만 불산 사고가 연달아 터졌고, 그럼에도 최고책임자는 "돈만 벌면 된다"는 성과중심의 인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 삼성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은 아들의 부정입학 의혹에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신경영 선언이 삼성의 현재를 있게 했다면, 20년 후의 삼성을 있게 할 또 다른 화두는 분명 국민 속에서 고민돼야 한다. 너도나도 삼성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삼성에 대해 존경을 보내지 않는 이중적 구조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잘못의 중심에 스스로를 두고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이 말하는 '또 하나의 가족'은 바로 국민이고, 우리사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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