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예빈기자] "젊은이들에게 신촌이 있다면, 노인들에게는 종로가 있다"
종로가 실버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관은 물론 바둑원, 이발소, 다방 등 어르신들이 즐길 거리로 가득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어르신들을 위한 2000~3000원 짜리 밥집들도 즐비하다.
지난 25일 종로 거리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더운 날씨에도 수많은 노인들로 북적였다.
낙원동에서 국밥을 드시고 계시던 최일영 할아버지(65세)는 "종로는 값싸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고, 노인들을 위한 즐길거리도 많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서 지인들과 만난다"고 말했다.
◇추억을 그대에게..'허리우드 극장'
종로 낙원상가 4층에는 '허리우드 극장'이 있다. 허리우드 극장은 55세 이상이면 단돈 2000원에 영화관람을 할 수 있는 실버전용영화관이다.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곧 상영할 영화를 기다린다. 이날의 상영작은 '레미제라블'이다. 허리우드 극장은 하루 3번 같은영화를 상영한다. 상영작은 일주일 주기로 바뀐다. 주로 어르신들이 즐겨볼 수 있는 추억의 명화들이 상영된다.
김윤건 할아버지(64)는 "옛날 영화를 친구들과 함께 볼 수 있으니 참 좋다"며 "영화를 보고 나서 친구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영화를 관람하러 온 김병세 할아버지(80)도 "한달에 한 번씩은 꼭 아내와 함께 이곳에 나온다"며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멋진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말했다.
◇여성 관객 2명이 종로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 팜플렛을 보고 있다. (사진촬영=양예빈 기자)
◇3000원의 여유, '커피숍'
종로에 또 하나의 여유는 바로 곳곳에 들어선 커피숍이다. 스타벅스, 까페베네 등 프렌차이즈 커피 한잔 값은 5000원을 웃돌지만, 종로 커피숍의 음료가격은 대부분 3000원 이하다.
종로 대표 명물 커피숍 중 하나인 '신세계'에는 이른 시간에도 벌써 손님들이 꽤 찼다.
카라멜 마끼야또, 프라프치노 등 어려운 음료 이름은 이곳에 없다. 커피, 과일주스, 냉매실, 칡즙 등 어른들이 쉽게 주문할 수 있는 음료들이 마련돼 있다.
커피숍 한 켠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이정훈 할아버지(77)는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고 이곳에 자주 나온다"며 "나이 든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얼굴보고 대화할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커피숍 '추억 더하기'에는 디제이(DJ)도 있다. 언제든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하면 디제이가 틀어준다. 신청곡을 쉽게 선정할 수 있도록 커피숍 메뉴판 옆에는 '애청가요 500선' 목록이 따로 있다. 추억의 도시락 값은 3000원, 음료 값은 2000원이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싼 값에 음료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김상걸 할아버지(60)는 "옛 생각을 하며 이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신다"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남성 2명이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촬영=양예빈 기자)
◇패션의 완성은 종로에서
이곳에는 옷가게도 많다. 어르신들이 입기 편하고 예쁜 옷들이 잔뜩 진열된 매장이 거리 곳곳에 숨어 있다. 옷가게 안에서 가방, 구두, 악세사리 등을 함께 팔기도 한다. 디자인을 꼼꼼히 살피고, 집주인과 가격 흥정을 하는 어르신들이 눈에 띈다.
김순례 할머니(65)는 "집이 안암동인데도 옷은 꼭 종로에 와서 산다"며 "20년 째 옷
을 구입하는 단골집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가게 주인이 내 취향도 잘 알고 내 체형도 잘 파악한다"며 ":주인과 내가 같이 늙어가다보니 이제 거의 막역한 사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옷가게 '루디아'의 김길림 사장(58세)은 "이곳에서 벌써 33년 째 장사를 하고 있다"며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한 가게이지만 너무 노인네같은 디자인이 아닌 젊은 감각이 살아있는 옷을 판다"고 말했다.
이어 "주 고객층이 50~60대 이다보니 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파악하고 최대한 그에 맞는 옷과 신발을 들여놓으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종로 옷가게에서 한 여성이 옷을 고르며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촬영=양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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