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이 유로존에 집중되고 있다.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이 살아난 가운데 씀씀이를 줄이던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면서 경기 상승 기대감이 커지자 유럽 증시와 펀드로 자금이 밀려오는 것이다.
유로존은 지난 2분기 성장률 0.3%를 기록하면서 6분기 연속 경기침체에 종지부를 찍더니 연일 경기회복을 알리는 경제지표를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양적완화 축소 불안감에 신흥국을 이탈한 투자금이 미국이 아닌 유럽으로 방향선회를 하면 유럽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유럽의 고질병인 높은 실업률과 긴축 프로그램, 독일 총선을 비롯한 정치 변수 등이 유로존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유로존 주식·펀드로 투자금 ‘봇물’..거시경제 개선 ‘덕분’
26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은 글로벌 투자금이 유로존 시장에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유럽 3대 주가지수도 연초 대비 10% 이상씩 상승하며 투자 심리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렸다. 특히 프랑스 CAC40 지수는 13.3%나 뛰었다.
미국의 S&P 500 지수와 유사한 범유럽권 지수인 스톡스유럽 600지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로존 유지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밝힌 이후 13개월 동안 19%나 올랐다.
자산운용 업체 블랙록은 "유럽증시에서 몇 달간 돈이 유출되다가 이제 비로소 새로운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분위기가 반전된 이유는 독일을 중심으로 제조업이 살아난 가운데 기업과 민간의 자신감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지난주 시장조사기관 마르키트는 8월 유로존 복합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1.7로 전달의 50.5를 능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26개월 만에 최고치다. 제조업 PMI 역시 26개월래 최고치인 51.3을 기록했다. 지수가 50을 넘으면 경기확장을, 이하면 위축을 뜻한다.
또 지난 23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유로존 8월 소비자신뢰지수가 마이너스 (-)15.6로 집계됐다. 이는 전망치인 (-)16.50을 웃돈 것으로 2년 1개월 만에 최고치다.
최근 여론 조사를 봐도 유럽인들의 자신감이 살아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7월 유럽연합(EU) 설문조사기관 유로바로미터가 3만2694명의 유럽인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노동시장이 앞으로 더욱 침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가을에는 62%가 고용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의 자신감도 나아졌다. 민간경제연구소인 유럽경제연구센터(ZEW)가 발표한 8월 독일 투자자신뢰지수는 42.0으로 시장 전망인 39.9와 전월의 36.3을 모두 능가했다.
◇ZEW 8월 독일 투자자신뢰지수 <자료제공=ZEW>
동유럽 최대 영토를 자랑하는 폴란드와 체코의 성장세도 유럽 경제에 보탬이 됐다. 폴란드는 독일 수요 증가로 버스회사 솔라리스 등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2분기 수출이 전분기 보다 0.3% 증가했다.
체코는 지난 2분기 0.7%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18개월 연속 경기 침체를 극복하더니
이제는 자동차 회사 스코다와 폭스바겐 체코지부를 중심으로 산업부흥을 꾀하고 있다.
◇유럽증시, 美보다 매력적.."추가 상승 이어질 것"
전문가들은 유럽 증시 랠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상승 여력이 있다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유럽 증시 랠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유럽국가의 주가지수가 여전히 2007년 고점에 못미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며 올 해 들어서만 20% 상승한 미국 증시에 비해 그만큼 오를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호전된 경제 지표에 힘입어 투자금이 몰리는 가운데 미국 양적완화 불안감에 신흥국을 이탈한 자금이 미국 보다 저평가된 유럽 시장으로 쏠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T.로위프라이스의 딘 테너렐리 유럽 펀드매니저는 “유럽 증시는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며 “증시가 아직 유럽의 경기 회복세를 충분히 반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쇼울 마켓필드 어셋 매니지먼트 회장은 "유럽은 회복 사이클을 지나는 중"이라며 "주식 시장에서 상승 장세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윌리엄 리겔 미국 교직원연금보험 주식투자 부문 대표는 “유럽은 주식투자에 매력적인 지역”이라며 “최근 가치는 상당히 저평가됐으며 기업 실적은 정상 수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주식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동안 유럽 펀드에도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 펀드평가사인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유럽 펀드에 20억달러가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23% 증가한 것이다.
유입 속도도 빨랐다. 펀드정보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 글로벌이 이달 초 조사한 결과, 미국 투자자들은 한 달 동안 무려 37억달러를 유럽 주식·펀드에 투자했다. 이는 한 달 기준으로 올 들어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몇몇 글로벌 투자회사들은 포트폴리오에 유럽 관련 주식과 펀드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월 이후 글로벌 펀드 매니저들은 자사의 포트폴리오에 유로존 주식의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사별로 보면 골드만삭스는 지난 7월 모건스탠리캐피탈인덱스(MSCI) 세계지수 대비 유럽주식 비중을 8% 높여 잡았다. JP모건도 선진국에 대한 투자는 유럽을 중심으로 확대한다는 전략을 담은 보고서를 최근에 공개했다.
이런 가운데 투자사들은 소비재 판매업 중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나 내수시장도 큰 종합생활용품업체 유니레버,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 등의 성장을 점쳤다.
더불어 지난해 투자은행 재구조화를 통해 웰쓰 매니지먼트사업을 확장한 UBS, 매출 예상치를 상향 조정한 덴마크 의약 전문업체 노보노디스크,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 등도 발전이 기대되는 기업으로 꼽혔다.
앤 스틸 스레드니들자산운용 펀드 매니저는 "아직도 유럽 증시가 상승할 여지가 있다"며 "웰스매니지먼트 전망이 좋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고질병 실업률..유로존 성장 발목 잡을 수도
다만 일각에서는 노동시장이 개선되지 않으면 유로존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로존의 실업률은 경쟁국인 미국보다 약 5% 포인트나 높은 12.1%에 달한다. 이는 역대최고치다. 스페인은 무려 26.3%나 육박한다.
유럽 재정위기국 또한 유로존 성장에 악재다. 아일랜드 정부는 내년 쯤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종료할 계획이나 가계부채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며 이탈리아는 지난 6월 기준 정부 부채 규모가 사상 최대규로 불어났다.
팀 스티븐슨 헨더슨글로벌인베스터스 주식펀드 매니저는 "위험요소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로화 가치에 영향을 미쳐 각국 수·출입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경기 성장세가 이어진다 해도 선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대다수의 펀드매니저들이 당분간 소비재와 금융업이 설비와 에너지 분야의 성장세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전문가들은 유럽 기반의 다국적 기업 중 이미 주가 상승을 경험한 기업에 대한 투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독일 보험사 알리안츠는 1년 동안 주가가 30% 가까이 올랐고 코닌클예크 필립스 일렉트로닉스도 주가 상승을 이미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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