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녹취록 공개, '내란 음모·예비' 적용 법리 맞나?
성립 여부 두고 법률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이적죄' 의견 많아..영장발부 가능성 무게
2013-08-30 18:13:32 2013-08-30 18:16:39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법원이 30일 내란 음모·예비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를 결정함에 따라 이번 사건 수사가 본궤도에 올랐다.
 
이와 함께 국정원과 검찰이 이 의원과 홍순석 통진당 경기도 당 위원장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에 적시한 내란 음모·예비 혐의가 성립될 수 있을지에 대해 법리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수원지검은 전날 이 의원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내란 음모·예비 및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행위) 혐의를 영장에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안법 입증 어려움 없을 듯
 
법률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국정원의 녹취록 내용을 분석할 때 이 의원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입증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의원의 "북은 집권당 아니야. 그렇지. 거기는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야. 다 상을 받아야 돼. 그런데 우리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야. 지배세력한테는 그런 거야"라는 등의 발언은 국보법상 찬양·고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석기 의원(사진출처=이석기 의원 블로그)
 
그러나 내란 음모·예비 혐의에 대해서는 음모·예비 등 구체적인 행위에 앞서 공개된 녹취록상 발언 등이 형법상 내란의 개념을 충족했는지를 문제로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국방 및 안보 분야에 정통한 한 중견 변호사는 "형법적 개념의 내란은 국가를 전복 또는 참절하거나 국헌 문란 목적이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이 요약본임을 전제하면서 "녹취록 내용을 전체적으로 볼 때 목적 등은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구체적인 계획과 가능성과는 관계없는 의견들이 대부분"이라며 "굳이 내란이라고 표현한다면 법적 내란보다는 문학적 내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우리 현실상 가능성 있는 내란은 군대를 장악하거나 북한과 연계된 군사행동이어야 가능한데 녹취록에서의 발언은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타격 대상으로 평택 유조창이나 혜화전화국 등 구체적인 장소가 거론된 부분에 대해서도 "이런 장소들을 타격해 점거하는 것만으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을 마비시키거나 그 지역을 점령해 국가의 공권력이 미칠 수 없게 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내란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녹취록 발언 '내란' 보다 '폭동·소요'에 가까워
 
그는 "국회 등 공공기관을 장악하거나 특정 지역의 경찰서를 타격해 무기를 취득한 뒤 행정관청을 점거해 관할지역을 점령하자는 정도의 목적과 계획은 교류되어야 내란으로 볼 수 있다"며 "녹취록에서의 언급은 폭동이나 소요 등을 통해 관심을 끌어보자는 정도로 이해된다"고 전했다.
 
판사출신의 또 다른 중견법조인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현재 공개된 녹취록 요약만 보면 내란으로 볼 수 있는 요건인 목적이나 가능성이 결여됐거나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헌법기관이나 공공기관 및 특정지역을 점령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배제한다는 목적과 그에 다른 인적·물적 계획이 거론되어야 한다"며 "녹취록에서의 대화 내용은 일종의 주먹구구식 토론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지역의 한 로스쿨 교수는 "녹취록의 내용이 내란의 개념이 충족되었다고 보더라도 음모의 단계까지 갔다고 볼 수는 없는 것으로 본다"며 혐의 성립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내란음모죄는 내란죄의 실행착수 전에 그 실행의 내용에 관하여 2인 이상의 자가 통모, 합의를 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추상적, 일반적 합의만으로 부족하다"며 "녹취록의 대화내용은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모의가 아닌 일반적인 의견 교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석기 의원(사진=뉴스토마토DB)
 
반면, 내란음모 혐의가 짙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없지 않다.
 
서울지역의 또 다른 로스쿨 교수는 "녹취록 내용을 보면 이 의원이 강연형태로 총론적인 내란을 지시하고 그에 따라 참석자들이 분임토의식으로 구체화 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추상적인 의견이지만 그 의견들을 종합해볼 때 충분히 구체화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평택 유조창이나 혜화 전화국 등 구체적인 타격 및 점령 대상과 소속 직원에 대한 포섭의 중요성 까지 거론 된 것을 볼 때 내란의 모의로 볼 여지가 상당히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도 "총을 준비하자는 의견제기와 취득 방법이 나와 있고 특히 폭탄제조에 대해서는 '사람을 살상시킬 만큼 위협을 가질 수 있다. 제조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추천하고 참여하면 된다'는 등의 발언은 매우 구체적이며, 준비단계인 예비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군부대 활동상황 조사..음모 지나 예비단계
 
판사 출신의 또 다른 변호사도 "전반적인 취지로 볼 때 국토참절 또는 국헌문란의 고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인천지역을 거론하며 테러사건시 군부대의 움직임, 소방특공대 등에 대한 활동상황을 조사했다는 것은 상당히 진척된 정도의 모의 즉 음모, 더 나아가 예비까지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란 음모·예비와는 별도로 형법상 '이적죄'의 성립가능성이 오히려 높다고 해석하는 법률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판사 출신의 또 다른 변호사는 "녹취록에 나온 전반적인 취지는 모의하는 자들이 독자적으로 공공기관이나 시설을 타격 한다기 보다는 북한군이 쳐들어오거나 특작부대 등을 남파할 경우 이들을 효과적으로 돕겠다는 쪽으로 해석된다”며 “이는 곧 형법상 이적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형법은 '적국을 위하여 전조에 기재한 군용시설 기타 물건을 파괴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자',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 등을 이적행위자로 보고 사형 또는 무기징역 등의 엄한 형을 정하고 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군사상의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 같은 행위가 국가적법익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점을 감안해 내란죄 처럼 음모·예비범들도 징역 2년 이상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녹취록만으로는 부족..확정적 증거 확보가 관건
 
이같이 내란 음모·예비 혐의 법리 적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만큼 국정원이 공개된 것 외에 얼마나 많은 확정적 증거들을 가지고 있느냐가 수사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개된 녹취록 외에 내란의 혐의를 명확히 확정지을 수 있는 증거물과 목적실현을 위한 조직적이고 구체적인 지휘망 및 조직구성의 인적 증거를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음모 단계를 지나 예비혐의까지 적용한다면 상당한 물적증거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
 
바통을 이어 받아 수사해야 할 검찰도 이 부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이 의원 등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서는 대체로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온다.
 
복수의 법률전문가들은 "구속영장 발부는 법관에게 본안 판결에서의 유죄에 대한 확정적인 의심 정도를 요구하고 있지 않고 범죄의 상당한 혐의만 있으면 된다"며 "녹취록 내용만 봤을 때 내란 음모·예비 개념에 대한 논란이 있더라도 해당 범죄에 대한 상당한 의심이 있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어 수사기관이 영장발부를 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설령 내란 음모·예비에 대한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더라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짙은 만큼 이 혐의에 대한 구속수사의 필요성이 클 것"이라며 영장발부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한편 수원지법은 이날 오후 2시30분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요구를 결정하고 요구서를 수원지검으로 송부했다. 체포동의 요구서는 대검찰청과 법무부, 국무총리실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다음주 중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 사건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엄중한 사건이고 국민적 충격도 크다"며 "반국가적 범죄행위의 전모를 낱낱이 밝힐 수 있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지휘를 철저히 하고 송치후 수사를 위한 준비에도 만전을 기하라"고 대검 공안부와 수원지검에 지시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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