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대선불복'은 이렇게 하는 것
2013-10-22 16:37:00 2013-10-22 17:48:47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새누리당이 곧잘 꺼내드는 무기는 '대선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거냐'다.
 
대선불복이라는 건 곧 '박근혜 퇴진투쟁'을 의미한다. 야당이 두팔걷고 뛰어드는 대통령 퇴진 투쟁은 곧 정국의 대혼란과 국정 중단을 의미한다. 아무리 독기가 오른 야당이라도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결정이다.
 
새누리당은 한편으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에 기대고 또 한편으로는 정권퇴진 투쟁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의 요구가 비등할 때마다 이 카드를 내민다.
 
그러면 민주당은 움찔해 '그게 아니고~'라며 목소리톤이 낮아진다.
 
(사진=조승희 기자)
 
국정원과 군, 경찰 등 정보 권력기관들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고 전직 대통령의 정상회담록을 활용해 대선에 개입해 결과를 뒤바꿀만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엄정하게 수사를 해보면 알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오면 대선이 무효인지 유효인지 그때가서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대선불복이냐 아니냐는 그렇게 유권자들의 뜻에 따르면 된다.
 
그러나 지금 단계는 검찰의 수사가 외압으로 제대로 진행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 국정원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검사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수사 자체가 원활하게 나가지 못하고 있는 지금은 수사결과를 갖고 논해야 할 대선불복, 선거불인정을 따질 단계가 아닌 것이다.
 
새누리당은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리자는 얘기를 곧바로 대선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 흘러가는 일의 순서를 모르는 것인지, 수사결과가 뻔하니 아예 미리 막아보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선거가 공정했는지 조사도 않고 대선이 끝나자마자 다짜고짜 대선 불복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다름아닌 새누리당이 원조다.
 
더 나아가 새누리당은 기회를 보다 결국 현직 대통령을 탄핵까지 했다. 대선불복이라는 말은 새누리당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첫해였던 2003년 9월3일 당시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전한 언론보도를 보면 또다른 중진 의원은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려야 한다는 게 상당수 소속 의원들의 공통된 심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사덕 당시 한나라당 총무도 나선다. 홍 총무는 2004년 1월16일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국민들에게는 바보가 될 권리가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바보짓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너무 잘못 사용해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잘못 뽑은 대통령을 바꾸기 위해 한나라당은 결국 직접 행동에도 나선다.
 
홍 총무의 발언이 있고 한달쯤 뒤인 2월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뭘 잘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초미니 여당 열린우리당을 돕고 싶다는 표현이었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이 발언 한마디를 빌미로 결국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다. 노 대통령은 헌재의 최종 판단이 있기 전까지 모든 직무가 정지됐으며 대한민국은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아야 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하면서 낸 결정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지만 대통령을 탄핵할 정도는 아니다"였다.
 
모두가 다 아는, 그리고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상당수 의원들도 사실은 이렇게 생각했음직한 결정을 얻기 위해 한나라당은 전대미문의 현직 대통령 탄핵사태를 촉발하고 정상적 국가운영을 마비시켰다.
 
탄핵사태를 거쳤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인정한 것도 아니다.
 
한해가 지난 2005년 2월 3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남경필 의원은 "이제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해야 한다"며 "우리에게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제 '반노'로는 안된다"고 동료의원에게 호소한다.
 
남 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노 대통령을 탄핵한 이후에도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게 한나라당의 대부분 정서라는 반증이다. 그리고 이 인식은 2013년 10월 현재까지도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에게는 이런 과거가 있다. 대선불복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들이 오래전에 꺼낸 말은 흩어졌어도 기록은 남았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새누리당이 대선불복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새누리당이 지금 대선불복이냐며 으름장을 놓으면서 국정원 수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우리나라가 지금 상식적인 상태인지를 의심케 만드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호석 정치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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