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했던 천영우란 사람이 29일 아침 라디오프로그램에 나와서 하는 얘기를 들었다. 매우 충격적이다.
주제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사람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은 온전히 그들이 선택할 문제이고 주변국은 그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는 한에는 가타부타 말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과거 2차대전 전범국가인 일본이 재무장을 하고 또다시 전쟁할수 있는 길을 터주는 '보통국가'로 가는 문제는 지구상의 양식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반대하고 있거니와 설사 다른 나라들이 이를 허용한다고 해도 일본에게 36년간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던 역사적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문제다.
이는 우리가 맨 마지막까지 막아서야 하는 문제이며 일본에 의한 전쟁범죄 피해국가인 우리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란 결국 북한에 대해 일본이 무력을 동원할 길을 열어주자는 건데 이는 일본군의 한반도 재진출을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묶여있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보다 군사력이 열세인가, 경제력이 열세인가. 뭐가 모자라서 일본까지 끌어들이는 것인지 도대체 알수가 없다.
그리고 북한과 싸우든 화해하든 남과 북의 일인데 엉뚱한 남의 나라 일에 숟가락 얹으며 군사력을 동원하려는 것을 왜 허용해야 하는가. 그것도 일본에게 말이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과 만주의 독립군들이 이런 꼴 보자고 목숨을 바쳐가며 일본군과 싸운게 아니다.
일본에게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것은 임진왜란때 '명을 치러가는데 길을 빌려달라'던 일본에게 길을 내준 것과 다를 게 없는 일이다.
집단적 자위권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재무장과 보통국가화는 지난 민주정부 10년간은 일본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감히 서랍속에서 꺼내지도 못한 문제였다.
그러나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이 알아서 선택할 문제'라는 인식를 가진 천영우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를 총괄했던 이명박 정부 기간, 그리고 그와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일본은 자신감을 갖게 되고 미국은 한국이 이를 허용한다는 시그널을 확인하게 됐다.
끝까지, 악착같이 반대할 줄 알았던 한국이 '그럼 그렇게 해'라는 자세를 보이자 일본은 비로소 때가 왔다고 느낀 것이다.
미일중과 북한까지 엮여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4각파도는 어느 하나의 파도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어떤 파도든지 지혜롭게 헤쳐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외교전략이 이미 제시된 바도 있다.
미일,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느 한편에 중점을 두려는 스탠스를 보이면 무게추는 대개 우리가 잡는 쪽으로 기운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판을 주도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흐름을 제어할 수는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서 원하는 게 간절할 때는 판을 끌고 나갈 수도 있다.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상과 국력은 이제 그 정도는 된다고 본다. 우리가 중국쪽 추를 잡으면 미일은 이를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고 미일측 추를 잡으면 또 확연히 그쪽으로 추가 기운다.
북한과의 문제는 우리가 제1의 당사자로서 마음만 먹으면 국제사회에서 확고부동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 우리는 캐스팅보트를 움켜쥐고 여러 주변국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동북아균형자론의 요체다.
동북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외교지평을 가장 최대한으로 열 수 있는 바로 그 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통칭해 새누리당 정권은 매번 일방적으로 미일동맹의 추를 집어듦으로써 이러한 국익을 저버리고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우경화와 보통국가화 시도는 그간 한국이 이를 용인할 것이란 잘못된 시그널을 보냈던 새누리당 정권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자신들이 벌이는 이런 행위의 의미를 그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국가 권력이 쥐어져 있는 것, 그래서 이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을 수습하기 힘든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호석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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