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지극히 평범히 살아온 회사원 스나다 도모아키 씨는 정년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꿈꾸지만 뜻하지 않게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 망연자실하며 슬퍼하기보다 꼼꼼하게 자신만의 '엔딩노트'를 준비한다. 지금껏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 가족들과 여행하기, 미국에 있는 손녀들과 놀아주기, 아내와 시간보내기 등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다. 또 자신의 장례식도 미리 준비한다. 장례식을 위해 미리 세례를 받고, 장례식에 초대할 손님 명단도 미리 작성해 아들에게 일러 둔다.
지난 2011년 개봉한 '엔딩노트'는 아버지의 죽음을 딸이 찍어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남은 삶을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내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현대판 유언장 '엔딩노트'
엔딩 노트는 산 사람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남은 날을 어떻게 살지 기획하며 본인 장례식과 그곳으로 초대할 사람까지 구체적으로 계획해보는 책자다.
망자에 대한 추모는 실종된 채 허례허식으로 가득찬 우리 장례 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생전의 고인이 직접 자신의 장례를 기획한다는 점에서 장례식을 온전히 망자를 위한 추모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웰 다잉을 스스로 계획해야 산 사람과 망자 모두에게 아름다운 죽음 '굿 데스(good death)'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엔딩노트를 만드는 해피엔딩의 이준혁 과장은 "갑자기 사망할 경우 유족들은 유언도 듣지 못한 채 준비되지 않은 장례를 치러야 하고 혼란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런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남성이 엔딩노트를 작성하고 있다.(사진제공=해피엔딩)
◇임종 프로그램으로 웰 다잉 체험
죽음을 미리 겪어보는 임종 체험 프로그램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자신이 망자가 됐을 때 어떤 사람들을 떠올리고 어떤 것을 추억 속에 묻을지 등을 직접 유서를 쓰고 읽은 뒤 관 속으로 들어가 웰 다잉을 체험해볼 수 있어서다.
이런 까닭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사교의 장으로 오용하는 화려한 장례식이 아닌 진실로 자신을 위한 장례식을 계획하게 된다는 것이다.
임종 체험관을 운영하는 서비스119아카데미의 정숙일 원장은 "작업장 안전 수칙을 어겨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기업 직원은 울먹이며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본인과 동료,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다 큰 성인들도 참여 과정에서 울음을 터뜨린다"고 말했다.
◇임종 체험 프로그램의 한 장면.(사진제공=서비스119아카데미)
◇기계적 연명치료는 무의미
웰 다잉이 가능해야 그 끝인 죽음을 잘 계획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선 죽음 직전까지 기계적 연명 치료에 매달리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장례식을 계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장례에 대한 준비 없이 연명 치료를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망자는 삶을 스스로 정리할 기회를 잃고, 가족들은 장례 서비스 업체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이런 까닭에 환자에 대한 적극적 치료를 중단하고 남은 삶을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진영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 연구원은 "환자에게 완화 의료를 받으면 항암 치료에 따른 각종 부작용과 고통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삶을 정리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유자 성바오로 가정호스피스 센터장은 "웰빙, 웰다잉해야 굿 데스한다"며 "호스피스는 죽음 운동이 아니라 환자를 끝까지 편안하게 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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