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물러섰다. 삼성 스스로 “이 정도 논란까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진심이라면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대립의 축에 선 대학들의 각성도 요구된다. 임재해 안동대 교수 말마따나 “대학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삼성 체제에 종속될 뿐”이다. 상아탑으로서의 자존감은 일개 기업인 삼성의 도발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언론도 자기반성으로 돌아서야 한다. 삼성이 변화된 채용제도를 발표하자 각 방송과 신문들은 앞다퉈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서울대 입시제도 개편보다 파장이 컸다. 논란이 논란을 키웠다.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국 200여개의 4년제 대학들은 삼성이 통보한 할당숫자에 따라 희비가 명확히 엇갈렸다. 삼성이 부과한 비중에 따라 대학 서열이 매겨졌다. 당장 호남을 중심으로 지방대학들이 들끓었다. 여자대학들도 불만을 표출하긴 마찬가지였다. 수도권 대학들도 경쟁대학들의 할당숫자를 들춰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일부 대학들은 이번 기회에 삼성의 취업문을 뚫겠다며 모의 SSAT(삼성직무적성검사)로 추천인원을 선발키로 하는 등 적극성을 내비쳤다.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사회의 현주소였다.
원인을 제공한 삼성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한 차례 삼성공화국 논란을 겪으며 자신의 영향력을 실감한 삼성이다. 삼성은 채용제도 개선안 발표 당시 “SSAT에 연간 20만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고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등 과열 양상이 벌어지며 사회적 비용이 커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취업을 목적으로 한 스펙 쌓기 경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한 해 채용과정에서 100억원이 넘는 과다한 지출도 부담이라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본고사를 위해 예비고사를 치러야 하는 대학들로서는 삼성의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대안의 방향은 잘못됐다. 먼저 서류전형을 부활시켰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서류전형을 통해서는 출신지역과 학벌 등 눈에 드러난 1차 정보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삼성이 지양하겠다던 스펙이 또 다시 지원서 앞장에 등장하며 변별력의 기준으로 통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이번 논란을 부채질했던 총장 추천제의 경우, 삼성이 말한 도입 취지와는 달리 SSAT 사교육의 급격한 팽창으로 연결될 것이 자명해졌다. 삼성에 몇 명을 취업시켰느냐가 대학 평가의 중요한 잣대가 되면서 다수의 대학들이 SSAT 모의시험을 통해 추천학생을 선발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했다. 각 대학 주변에 SSAT 학원이 들어서고, 학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삼성바라기가 대학가를 집어삼킬 판이었다.
일개 기업의 채용제도 변화를 놓고 온 나라가 들끓는 기형적 현상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희극이다. 삼성도 억울할 수 있다. 기업의 인사 자율권에 대한 침해로 생각할 수 있다. 과도한 논란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한다면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삼성만 바라보는 우리의 비이성적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이다. 젊음의 패기도, 학문의 자존도 실종됐다. 자본이 대학을 예속화하고, 일등주의가 지배하는 봉건적 사회문화로는 그 어떤 창조도, 혁신도, 다양성도 추구할 수 없다. 모두가 삼성일 수 없다. 또 모두가 삼성이어서도 안 된다. 이는 삼성에게도 부담이다. 삼성바라기를 벗어던질 때다. 그래야 다양성이 산다.
김기성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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