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오는 21일 치러지는 대한변리사회 회장 선거를 앞두고 특허소송의 전문성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민사재판인 특허침해소송의 대리권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후보자들의 주장이지만, 사실상은 법원의 특허소송 전문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 해소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기업계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국가지식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특허소송의 전문성과 일관성 확보를 위해 특허침해소송의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법과 대전지법 관할로, 항소심은 특허법원 관할로 둬 그동안 고등법원과 이원화 되었던 특허침해소송을 일원화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관계부처 협의를 통한 준비기간 3년과 경과기간 1년을 고려하면 향후 4년간은 현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봇물을 이루고 있는 특허소송 건수가 하루가 다르게 더욱 늘어나고 국가별로 국익차원에서의 특허권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법원의 특허소송 전문성 문제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토마토>에서는 현안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외국의 예와 현장취재를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편집자]
지난 해 12월1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재판장 심우용)는 삼성전자가 자사의 상용특허 3건을 침해했다며 애플을 상대로 낸 특허침해금지 등 청구소송에서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는 2012년 3월 애플의 아이폰4S와 아이패드2 등에 적용된 기술이 자사의 상용특허 중 스마트폰의 화면분할 기능과 가로·세로 회전에 따른 화면 구성(유저 인터페이스) 방법, 문자메시지와 사진 표시 방법 등 3건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특히 아이패드2의 경우 스마트폰과 같은 이동통신단말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삼성의 특허침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고 직후 기업들과 특허전문 변호사들이 술렁거렸다. 아이패드2를 비롯한 애플사의 아이패드는 일반 휴대전화 같은 통신기능은 없지만 '인터넷 전화 기능' 이나 '페이스타임'과 같은 영상통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동통신기기로 보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전기통신기기로 상표 등록
무엇보다 한국특허정보원(키프리스)의 상표등록현황을 검색해보면 애플은 아이패드를 10류 상표로 등록하면서 상품 세목에 태블릿컴퓨터 외에 스마트폰 같은 이동통신단말기에 해당되는 전기통신기기를 지정했다. 아이패드를 광고하면서도 다양한 통신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동통신 단말기는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통신서비스 지역을 이동하면서 SMS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휴대전화기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정하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왼쪽)와 특허법원 전경(사진=뉴스토마토DB)
특허전문 변호사들은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에 일응 수긍하는 분위기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개인 변호사로 특허사건을 많이 다뤄온 한 중견 변호사는 "보편적인 시장의 상식과 기업들이 정의하고 있는 상품의 특성과 다소 동떨어진 설명"이라며 "시장에 혼돈을 줄 수 있어 보여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중견 특허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변호사도 "당해 사건과 다소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애플이 아이패드를 스마트폰과 같은 전기통신기기의 상표로 지정한 것은 애플 스스로가 아이패드를 이동통신단말기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아이패드를 상표로 통신기능을 강화한 새 태블릿컴퓨터를 출시해 분쟁이 생길 경우 이번 판결과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특허소송 전문성 부족..사법불신 우려
특허침해소송 당사자나 전문가 등 관련자들 중에는 이번 판결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판결에서도 시장의 현재 상황과 특허기술을 반영하는 데 다소 아쉬운 점을 지적하면서 특허 등 침해사건에서 법원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특히 기업 관계자나 발명가 등 특허 소비자들의 법원의 전문성에 대한 불신율이 높아 자칫 사법불신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대 산학협력단과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이 2012년 11월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에게 보고한 '특허소송 관할 개선 및 소송대리 전문성 강화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특허 등 침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전문성에 대해 원, 피고측 모두 전반적으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연구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22명 가운데 66.3%가 법원의 전문성이 매우 부족하거나 또는 부족하다고 답변했으며, 법원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비율은 11.2%에 불과했다.
법원의 전문성에 대한 직업군에 따른 의견을 보면, 특허제도 소비자(발명가, 기업인, 회사원, 학자, 연구자) 응답자 533명 중 353명(66.2%)이 법원의 전문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변리사 응답자 167명 중 113명(67.7%)이 법원의 전문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법관이나 변호사 등 법조인은 응답자 54명 중 16명(29.6%)은 부정적으로, 20명(37.0%)은 긍정적으로 평가해 긍정과 부정이 비슷한 정도를 나타냈다.
피고측 입장을 상정한 질문에 대한 응답 역시 법원의 전문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원고측 응답 결과와 유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성 관련 없는 법관 순환근무제 문제"
특허침해소송에 대한 법원의 전문성에 관해 당사자인 국민들의 불신이 높은 근본적인 이유는 법관들의 전문성에 대한 상대적 고려 없이 순환근무제에 따라 업무가 배정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 법관들은 2~3년 단위로 근무지와 담당업무를 부여받고 있으며, 법관들의 재판부 배정은 각급법원의 법원장과 수석부장 등이 합의해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법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지식재산 전문재판부나 특허법원 역시 같은 방식으로 업무가 배정되기 때문에 특허기술 등 지식재산권에 대한 전문성 보다는 법원의 사정 등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평가다.
특허침해소송 등 전문법관들의 확보도 과제로 지적된다. 종전까지는 관례적으로 지식재산권 전담재판부나 특허법원의 경우 지식재산사건 판결 경험이 많은 법관들 위주로 구성되어 왔지만 최근 이런 관례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삼성전자와 애플사건처럼 특허침해소송을 비롯한 특허관련 소송이 전 세계적으로 봇물을 이루고 있어 각 대기업과 대형로펌에서 별도로 대규모의 지식재산권 관리 전문팀을 꾸리고 법관들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법관들의 확보 문제와 관련해서 2~3년 단위의 법관 순환제 역시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법관 재직시 지식재산전문 재판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중견 변호사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에 대한 전문적인 재판을 위해서는 최소한 2~3년은 연구와 재판을 통해 전문성을 쌓아야 하지만 '할 만 하면' 보직이 바뀌고 있어 전문성 확보에 어려움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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