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유로존 경제성장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는 의견이 급증했다.
게다가 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추락한 데다 유로존 경제 2위 국인 프랑스가 병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ECB가 추가 부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ECB가 오는 6월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비롯한 부양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로존 성장률 0.2%..경기침체 위기 '급증'
1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유로존의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2%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0.4% 성장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봐도 1분기 성장률은 0.9% 올라 시장 예상치인 1.1%를 밑돌았다.
◇200~2014년 1분기 유로존 경제성장률 (사진=트레이딩이코노믹스)
유로존 성장률이 이처럼 저조한 수준을 맴돌고 있는 이유로는 고질병 같은 대규모 실업, 정부 부채, 높은 법인세 등이 꼽혔다.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높은 대출금리와 저조한 소비심리 또한 유로존 성장률을 끌어 내리는 악재로 거론됐다.
피터 반덴 오뜨 ING 수석 유로존 이코노미스트는 "실망스러운 성장률이 나왔다"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유로존이 가야 할 길은 멀다"고 분석했다.
시몬 틸포드 유럽경제개혁센터(CER) 부대표는 "경제활동은 늘었으나, 아직까지 경기침체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보통은 침체기를 통과하면 성장률은 빠르게 증가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별로 짚어보면 포르투갈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7% 하락했고 에스토니아와 키프로스도 각각 1.2%, 0.7% 내렸다. 네덜란드는 무려 1.4% 떨어지며 유로존 전체 성장률에 하락 압력을 가했다.
무엇보다 유로존 경제 분위기를 악화시킨 주범은 프랑스다. 유로존 경제 1위국인 독일이 0.8% 성장하며 제 몫을 다 하는 동안 경제 2위국 프랑스는 0% 성장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0.1% 상승에 밑도는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역내 경제 2위 국인 프랑스의 부진은 유로존 경제에 불안감을 가중시킨다고 진단했다.
프랑스 경기 하락 원인은 소비지출 감소에 있다. 지난해 4분기 당시 0.2% 증가했던 가계소비는 올 1분기 들어 0.5% 줄었다. 수입은 늘었는데, 수출이 줄어든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경기 위축 요인이다.
도미니크 바베트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기업과 소비자의 자신감이 떨어져 기업 투자와 소비 지출이 위축됐다"며 "다른 유럽 주요국과 달리 프랑스 경제 성장세는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상승률 1% 이하..CPI 전망치도 하향 조정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년과 내후년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주춤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면서 유로존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ECB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와 학계 전문가 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유로존의 올해 인플레이션율은 0.9%로 전망됐다. 이는 종전의 전망치인 1.1%에서 0.2%포인트나 내려간 수치다.
오는 2015년 전망치도 1.4%에서 1.3%로, 2016년 예상치도 1.7%에서 1.5%로 일제히 낮아졌다. 종전의 예상치를 달성해도 목표치인 2%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전망치가
추가로 하락한 것이다.
저조한 인플레이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0.7%를 기록한 이후 단 한 번도 1%를 넘어서지 못했다.
◇2011~2014년 4월 유로존 물가상승률 추이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지난 4월 CPI 상승률도 전년대비 0.7%로 ECB의 목표치인 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13일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이 낮아 유로존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침체)을 경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유로존이 내년까지 디플레이션에 빠질 확률은 25%"라고 지적했다.
빅터 콘스탄시오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도 "물가가 장기간 동안 낮은 수준을 이어가면서 위험도 커지고 있다"며 경기침체 위기론에 힘을 실었다.
◇ECB, 다음 달에 부양 카드 꺼낼 것..기준금리 인하·양적완화 도입 '가능'
물가 하락에 성장률 둔화 문제가 불거지자 전문가들은 ECB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내달 5일에 열리는 ECB의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비롯한 다양한 경기 부양책이 도입되리라고 전망했다.
리차드 바웰 스코틀랜드로얄뱅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제각각인 것으로 드러났다"며 "네덜란드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실망스런 성장률을 기록해 ECB가 6월에 행동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고 말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도 지난주 "오는 6월에 물가 수준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부양책을 단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 수준을 높이는 도구로는 기준금리 인하, 마이너스 예금금리, 미 연준 스타일의 자산매입 프로그램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 중 ECB가 시장에 돈을 풀 때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기준금리 인하 카드가 이번에도 나올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골드만삭스,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 그룹, BNP파리바는 ECB가 다음 달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금리 인하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 또한 적지 않았다. 그동안 해오던 방식으로는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론되는 부양책은 마이너스 예금금리와 미국식 양적완화다. 이 둘은 ECB가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던 비전통적인 수법이다.
2012년 7월부터 제로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단기 예치금리를 그 이하로 낮추면 시중 은행들은 ECB에 돈을 맡기는 대신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을 늘리게 된다. 시중에 유동성이 확대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미국식 양적완화를 적용하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처럼 ECB가 유로존 내 채권을 매입해 직접 시중에 돈을 풀 수 있다.
채권 불태화를 중단하는 식으로도 시중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 채권 불태화는 중앙은행이 채권매입액과 같은 양의 유동성을 흡수해 통화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조치를 중단하면 시중에 통화량이 늘면서 양적완화 같은 효과가 생긴다.
이처럼 다양한 카드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독일 중앙은행의 미지근한 태도가 변수로 남아있어 ECB가 얼마나 과감하게 칼을 휘두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뱅크 총재는 최근 "ECB의 대규모 양적완화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며 "다만, ECB의 정책 결정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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