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세계 가전시장 1위를 노리는
삼성전자(005930)가 국내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성장한 제습기 시장에 중국산 제습기로 진출해 눈살이다. 실리만을 쫓은 결과다.
삼성전자는 최근 제습기 제품군을 5개로 대폭 확대하고 국내 최초로 인버터 기술을 적용하는 등 연간 1조원대 규모로 성장한 제습기 시장 공략에 매진하고 있다. 그런데 낮은 기술 문턱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주문자 상표부착(OEM) 방식을 선택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선발주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제습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40만대에서 250만대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가구당 보급률도 지난 2011년 4%에서 2년 만에 10%대를 돌파했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소·중견기업들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 2012년 10여개에 불과했던 제습기 제조사는 올해 50여개에 달할 전망이다.
제습기 시장이 팽창하면서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OEM 방식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막강한 브랜드력과 마케팅 역량 등은 이미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주자들에게 위협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을 삼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적잖이 흘러나왔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술력과 생산력을 갖춘 삼성전자가 중국기업을 통한 OEM 방식을 선택한 것은 다소 의외다. 업계는 이를 두고 장기간 정성을 들여 시장 진출을 타진하기 보다 이미 영글은 시장에서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OEM 방식은 단순히 제조단가를 낮추기 위한 것만이 아닌 복합적인 사업전략 요소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연매출 228조원의 삼성전자 해명치고는 책임감과 시장 생태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 삼성전자와 국내 가전시장을 양분하는 LG전자의 경우 제습기 부품부터 일체를 전량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위닉스로부터 OEM 방식으로 제습기를 공급받아오다 최근 대부분의 물량을 중국으로 돌렸다. 4년여 전부터 삼성과 관계를 맺어온 국내 중견기업 보국전자도 일부 물량을 생산자 개발방식(ODM)으로 공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성공을 이끌었던 전형적인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 보인다”며 “회사 이익은 극대화할 수 있겠지만 제습기 시장 전체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땐 결코 회사 규모나 명성에 걸맞는 행보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대기업 특유의 시장 장악력으로 야심차게 제습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성적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10% 정도에 그친 것으로 알려진 삼성 제습기의 올 1분기 국내 시장 점유율은 삼성의 가전제품 치고는 이례적으로 낮은 수치다.
OEM 방식을 통한 원활한 공급 효과를 기대했던 삼성전자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반면 위닉스는 지난해부터 자체 브랜드 ‘뽀송’ 출시 후 현재 국내 제습기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간판인 소비자가전(CE) 부문 1분기 영업이익은 1900억원으로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2000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당초 증권가 예상치 4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내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국내 제습기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가 실리라도 챙길 수 있을 지가 남은 관건이다. 이미 명분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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