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지난 2010년 경기도 성남시가 부채 5200억원을 못 갚아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해외토픽에서 보던 지방자치단체 파산이 국내에서도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은 지방재정을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그로부터 4년뒤 6기 지방선거를 앞둔 올해, 지자체 곳간 사정은 얼마나 좋아졌을까?
정부와 시민단체 자료들을 비교·분석해보면, 결론은 '썩 좋아진 게 없다'. 우선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2008년 52.5%에서 2013년 51.1%로 1.4%포인트 낮아졌다. 대신 지자체 부채비율은 19조원에서 47조원으로 3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지자체 예산은 2008년 125조원에서 2013년 157조원으로 25% 증가했지만, 여기서 자체수입(지방세+세외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8.9%에서 55.6%로 줄었다. 반면 보조금 비중은 19%에서 21.8%로 높아져 오히려 중앙재정에 대한 지자체 예속이 더 심해졌다.
◇2008년 이후 전국 지방자치단체 예산 구성 추이(자료=바른사회시민회의)
4년 전 지자체 재정위기를 걱정하던 목소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사회·경제 등이 중앙에 집중된 탓에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다른 전국단위 선거인 대선과 총선에 비해 현저히 낮다. 지역 일꾼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과 기대치가 낮아 선거 출마자들은 지역을 위한 정책과 공약보다 선심성 공약만 남발한다.
이렇게 들어선 지자체는 매 연말이면 다음 해 세출·입을 따져 예산을 편성해 놓고도 본예산이 모자라 중앙정부 보조금을 받거나 한해 2차례~3차례씩 추경예산을 편성 카드를 꺼낸다. 지자체 재정의 중앙정부 예속은 가속화되지만 시민들은 여기에 큰 관심이 없다.
부실한 지방선거와 계획성 없는 지자체 재정운영, 누구도 지자체 재정을 걱정하지 않는 악습의 패턴이 20년째 이어져 오면서 마침내 지역 곳간이 거덜 났다.
◇풀기 어려운 '지자체 재정'..세수 늘리고 세출 줄이는 게 관건
전문가들은 많게는 수십·백만의 인구가 모인 지자체의 파산은 기업의 도산만큼 국가 재정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지자체 재정위기를 단순히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지자체 재정난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자체와 중앙재정의 관계, 포퓰리즘 공약, 지역경제 등 다양한 문제와 관련됐기 때문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지자체 세입과 세출, 중앙재정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자체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검토해봤다.
◇6·4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예시 ⓒNews1
행정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세입·세출 구조의 불균형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가는 돈은 많은데 지자체가 거두는 세금이 적어 해마다 재정난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배인명 서울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출 비중은 4대6지만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약 8대2"라며 "중앙재정에 대한 지자체의 의존이 매우 높아 지자체가 효율적이고 책임 있는 재정운영을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지자체 재원 확충이 필수적"이라고 단언한 뒤 "국세 일부의 지방세 이양하고 지방소비세 인상, 지방소득세 강화 등을 통해 지방세를 확충하는 등 지방의 자체 재원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회예산처 관계자도 "지자체 재정위기는 선심성 공약 때문이든 지역산업 낙후 때문이든 세수에 비해 세출이 지나치게 큰 게 근본 원인"이라며 "지방교부세 인상, 관광세·고향 발전세 등을 도입하되 사회간접자본과 문화·관광 부문 세출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 곳간 살찌우기는 최근 국회에서도 활발하게 논의 중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
(사진)은 레저세 과세대상을 확대하고 관광세를 도입하는 한편 담뱃값을 인상해 5년간 약 6조원의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의 '지방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 역시 지방교부세 지급비율을 내국세의 3% 범위에서 추가 지급하는 '지방교부세법 개정안'과 근로자가 부담할 지방소득세를 직장 주소지가 아닌 거주지 주소지 지자체가 가져가게 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중앙과 지자체 재정 분담규모 재설정..재정위기 진단 시스템 구축
최근 정부의 복지확대 기조에 따라 지자체의 복지재정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중앙과 지자체 간 국가사업 부담금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김현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복지 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이 증가하고 있지만 중앙과 지자체의 재정현안이 서로 달라 지자체의 재정압박을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전체 예산 326조 중 복지재원은 92조로 약 28%며, 중앙과 지방이 7대3의 비율로 이를 분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그는 "7대3은 평균 수치고 지자체 중에서도 경제 격차가 큰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지역 간 불평등을 따져 차등보조율과 국고보조율을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재정상태를 진단하고 위험을 미리 경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의견도 있다.
배인명 서울여대 교수는 "지자체 스스로 재정운영에 대하여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재정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한다면 지방재정의 지속가능성은 크게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안전행정부는 지자체 재정자립도를 비롯해 재정자주도, 통합재정수지비율, 예산대비채무비율, 지자체 부채비율, 사회복지비비율 등 지자체 재정 관련 주요 지표들을 종합·공시하고 있지만 2년 전 통계를 바탕으로 작성돼 미래 예측 가능성이 다소 떨어진다.
◇지방재정 통합공시 항목 및 지표산정 방식(2012년 회계기준, 자료=안전행정부 재정고)
배 교수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인구감소와 중위 연령층 상승이 계속되면 미래 재정수입이 축소되고 복지세출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와 각 지자체 실정에 맞는 모형을 개발해 지방재정 추이를 꾸준히 분석한다면 지방재정의 건전성과 책임성,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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