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동반성장위원회가 정부 눈치보기 끝에 상생을 저버렸다.
사실상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과 운영에 관해 더욱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대기업 편들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동반위가 '상생'이 아닌 '갈등'을 택하면서 '동반성장'이라는 위원회 명칭이 부끄럽게 됐다.
동반위는 11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제28차 전체회의를 열고 중소기업 적합업종 관련 개선방안 및 2013년 동반성장지수 산정 결과를 발표했다. 시장은 즉각 혼란에 빠졌다.
◇적합업종 재지정 신청 없으면 '자동해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자율적 합의는 중시하되 중소기업 적합성 검토기준과 범위는 까다로워졌다. 한 번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품목에 대해서도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대·중소기업 간 합의를 전제로 지정기간인 3년이 지나지 않아도 조기해제가 가능해졌다. 자율적 합의라고는 하나 힘의 논리를 감안하면 중소기업 측에서는 대기업의 압박을 막아줄 제도적 장치가 사라지게 됐다.
또 그간 논란이 됐던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과 관련해 별도의 재합의 신청이 없으면 자동으로 적합업종 지정이 해지된다. 적합업종 권고품목에서 한 번 해제되면 다시 적합업종 및 사업조정 신청을 할 수 없다. 재합의 기간 역시 중소기업의 자구노력 등을 평가해 등급을 매겨 최대 3년 내에서 기간을 차등 산정한다.
동반위가 이날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독과점 여부 ▲중소기업 지원 시책으로 인한 중복보호 여부 ▲국내 대기업의 역차별 및 외국계 기업의 진출 여부▲제조 전문 중견기업에 대한 보호 ▲대·중소기업간 자율경쟁을 통해 고성장이 예상되는 산업 ▲소비자 후생과 전후방 산업에 부정적 영향 여부 등을 고려해 향후 신규 적합업종을 선정하게 된다.
김종국 동반위 사무총장은 적합업종 재합의 기간에 대한 논란에 대해 "재합의 기간 산정은 민간 합의를 존중하기로 했다"면서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중소기업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외국기업이 어느 정도 진출했는지 등에 대한 자료를 조정 협의체에 제공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세탁비누 시장의 경우 LG생활건강이 철수한 뒤 무궁화가 이를 거의 독점해 왔다"면서 "대기업 진입이 없고 중소기업 1곳이 시장의 지배적인 사업자가 됐다면 (지정해제를)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적합업종 운영 가이드라인에 자신들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적합업종 제도를 흔들기 위한 대기업계의 거짓 주장을 근거로 한 왜곡된 내용이 확대 재생산되는 현실에 억울함을 넘어 분노를 느껴왔다"면서 "이번에 마련된 적합업종 가이드라인도 일각의 왜곡된 주장으로 인해 변질돼 무리하게 적용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적합업종 해제 논의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심의와 함께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3년 연속 동반성장 '우수'에 삼성전자·삼성전기, '꼴찌'에 홈플러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 (사진=동반성장위원회)
10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동반위가 2013년 동반성장 지수를 평가한 결과 ▲'최우수' 14개사 ▲'우수' 36개사 ▲'양호' 36개사▲'보통' 14개사로 분류됐다. 다만 지난해까지 '우수-양호-보통-개선' 등급이었던 것이 올해는 '최우수-우수-양호-보통'으로 변경돼 발표됐다. 조사대상인 대기업들의 불만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은 "동반성장지수 측정이 잘못한 기업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대표 기업들끼리 경쟁을 통해 올바른 사회문화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00여개 기업이 네 개의 등급으로 나뉜 가운데 하위 등급의 성적을 받아든 기업들로서는 비판적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하위 등급인 '보통'을 받은 14개 기업 중 11개사가 식품과 유통, 패션 기업들이라는 점에 해당 업계는 불만이 팽배하다.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은 제조업과 유통업 간의 업종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동반성장지수 평가의 개선 여지를 남겼다.
3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기록한 홈플러스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동반성장 6개 계획을 수립하고, 개선 대책을 마련하는 등 동반성장활동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동반위는 이명박 정부 시절 경제민주화 흐름 속에 동반성장을 기치로 출범했다. 법적 제약은 없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및 동반성장지수를 통해 대기업들의 무차별한 횡포를 막는 방패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다. 특히 박 대통령이 규제를 가리켜 "쳐부숴야 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라고 규정하면서 동반위도 제 역할을 내려놓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정운찬 전 위원장에 비해 현 유장희 위원장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점도 동반위 위상 약화에 한몫 했다.
유장희 위원장은 지난 4월29일로 2년의 임기를 마쳤지만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아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정운찬 초대 위원장이 동반위를 박차고 나가면서 바통을 물려 받았다.
◇2013년 동반성장지수 산정결과(자료=동반성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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