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5일 육군 28사단 구타 사망사고와 관련해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일벌백계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휴가 뒤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윤일병 사건을 강도 높게 언급하면서 새누리당의 엄벌 기조와 보조를 맞췄다.
사건 자체가 워낙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이에 대한 적극적 해결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그동안 군부대 사망사고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던 여권이 이번 사고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세월호 정국을 탈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영상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군에서 계속해서 이런 사고가 발생해왔다. 그때마다 바로 잡겠다고 했지만 또 반복되고 있다"며 "절대 있어서는 안될 사고로 귀한 자녀를 잃으신 부모님과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참담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래서야 어떤 부모가 자녀를 안심하고 군에 보낼 수 있으며 우리 장병들의 사기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강한 어조로 관련자들을 질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강한 어조는 이번 사고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새누리당 기조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민간 인권단체인 '군인권센터'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사건을 처음 폭로한 이래, 새누리당은 지난 3일부터 이번 사고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새누리당은 3일 일요일임에도 이례적으로 최고위원회를 소집해 한민구 국방장관 등 군 지휘부를 불러놓고 강하게 질타했다. 또 4일에도 최고위에서 이 문제를 집중 비난한 데 이어, 주도적으로 국회 국방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소집했다. 5일 비공개 최고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당 차원의 특별위원회나 TF팀을 가동하자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 대표는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책상을 치면서까지 분노를 표출했다.
이 같은 여권의 태도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소극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 사과를 한 이후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공개발언을 삼가고 있다. 이 기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세월호 참사의 '주요 피의자'로 지칭하며 다섯 차례 검거를 촉구한 게 전부다.
지난달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면담에서 16일까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하기로 합의를 했지만 대통령이 침묵하는 사이 새누리당은 완강한 자세로 버티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농성을 하고, 단식도 했지만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권이 윤일병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며 세월호 덮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7·30 재보궐 선거 완승의 자심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 전략 전면에 '세월호 참사'를 내세웠던 야당에 대승을 거둔 만큼, 다른 이슈로 충분히 덮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들의 피로감도 상당해 강경기조로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당내에서 제기됐다.
실제 여권에서는 재보선 승리에 대해 '경제 활성화 전략의 성공'으로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재보선 승리 직후, 여권에서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누리당은 세월호 협상과 관련해 '양보는 없다'며 더욱 완강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야당이 재보선 참패 후 지리멸렬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재보선 후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등 내부 수습에도 벅찬 모습이다. 매주 월요일 진행됐던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도 연기하며 비대위 꾸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이 기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는 국회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을 ‘노숙자’에 비유하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세월호 피해 가족들을 국회에 머물 수 있게 했다며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한 비난 발언도 제기됐다. 결국 정 의장은 4일 세월호 피해 가족들과의 면담에서 퇴거를 요청했다. 세월호는 그렇게 국회에서 잊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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