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판결에 대해 17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지난 11일 1심 선고 이후 6일만으로, 항소 기한을 하루 남겨둔 시점이다.
검찰은 이날 오후 공소심의위원회를 열어 국정원 댓글사건과 관련해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법 유죄, 공직선거법 무죄'를 선고한 지난 11일 1심 재판부의 판결이 잘못됐다며 항소장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시한을 하루 앞둔 판결 6일 뒤에야 항소가 이뤄진 것에 대해 "웬만한 항소가 거의 만기 전날에 처리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유우성씨 사건 등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재판에서 무죄 판결 후 검찰이 즉각 항소의사를 밝혔던 점에 대해선 "(그 사건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야당과 시민사회 등에서는 검찰이 원 전 원장의 1심 선고 후 항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자,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News1
◇항소이유는 양형부당·법리오해
검찰은 이날 항소 이유에 대해 '법리오해'와 '양형부당'의 사유를 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법리오해는 증거능력 배척이라든지, (선거법 위반) 무죄 부분을 말하는 것이고, 양형부당은 1심의 (국정원법 위반) 유죄 부분의 형이 좀 낮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검찰이 제출한 디지털 증거 능력을 배척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국정원 직원이 자신에게 보낸 메일과 거기에 첨부된 첨부파일에 대해, 국정원 직원이 법정에서 '메일과 첨부파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는 이유로 증거 능력을 배척했다며 항소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다만 내부 논의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부분에 대한 항소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공소심의위원은 '(지난해 6월) 기소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는데 선거법 위반이 맞느냐'며 선거법 부분에 대한 항소에 반대했다. 그러나 항소를 하기로 한 상황에서, 선거법 부분도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검찰, 선거법 86조 적용 여부 여전히 '불투명'
검찰은 2심에서 공소장 변경을 통해 선거법 86조를 작용할지 여부에 대해 "항소심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서 결정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4월 원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국정원법, 선거법 85조(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와 함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한 86조도 적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같은해 6월 원 전 원장을 기소하며 공소장에서 이 부분은 뺐다.
1심 판결 이후, 검찰이 선거법 85조에 비해 혐의 입증이 비교적 쉬운 86조를 일부러 뺀 건 아니냐는 비판이 뒤늦게 일었다. '정치 관여는 맞지만 선거 운동은 아니다'는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애초 선거법 86조가 적용됐을 경우엔 달라졌을 것이라 것이 야당의 입장이다.
검찰은 이같은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공소장 변경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놓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진행과정에서 검찰이 끝내 공소장 변경을 하지 않는다면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선거법 86조 새로운 핵심 쟁점 전망
검찰이 공소장 변경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 없이 항소장을 제출함에 따라 항소심에서의 핵심 쟁점은 일단 2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통해 선거법 86조를 적용할지가 관심사다. 검찰이 항소심 도중에 공소장 변경을 통해 선거법 86조를 적용한다면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거 개입' 혐의 입증이 더 쉬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선거법 85조가 적용되기 위해선 우선 공무원이 '선거운동'을 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선거운동'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특정 후보의 낙선이나 당선을 위해 능동적·계획적으로 행동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반면 선거법 86조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85조에 비해 행위의 범위가 좀 더 포괄적이다.
법원의 태도도 변수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검찰이 공소장에서 86조를 적용하지 않은 것과 함께, 1심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을 검찰에 요구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재판부의 공소장 변경 가능여부에 대해선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야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같은 공직선거법 위반을 다투는 사건이기 때문에 재판부가 공소장 변경 요구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법원 관계자는 "공소장 변경을 법원이 검찰에 요구할 의무는 없다"고 설명하고 "적극적으로 변경을 요구한다면 중립을 지켜야 할 법원이 검찰을 코치하는 격이 된다"며 제한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어 "아주 예외적으로 현저히 정의에 반하는 결론이 예상될 경우 등에 한해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지만 이 때에도 사건과 적용 법조에 따라 각기 판단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1심이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1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지시에 의한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관여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선시기에 진행된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 글에 대해서도 '관행'이라며 선거법 위반에 면죄부를 줬다.
재판부의 이런 판단에 대해 야당·시민사회·법조계에서는 "궤변"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선거과정에서 이뤄진 정치행위가 어떻게 선거개입 행위가 아니냐는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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