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서울 성북구 장위1동 뉴타운 해제구역은 주차난이 심각하다. 차 2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들은 주차된 차들 때문에 사람이 지나가기도 불편할 정도다.
주차 문제는 주민들 사이에 불화를 일으킨다. 지난달 29일 월계로에서 장위1동으로 들어가는 오르막길 한 주택 앞에는 '주차금지'라고 적힌 대형 표지판이 서있다. 그리고 한대의 승용차가 표지판 바로 옆에 주차돼 있었다.
이 곳에 6년 동안 살았다는 김승룡(가명·65세)씨는 "차 주인도 근처 주민인데 어제 밤 집주인과 주차 문제로 크게 싸웠다.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하겠다면서 화를 냈는데도 아직 차를 안 뺐다"고 알려줬다.
◇지난 29일 장위1동 뉴타운 해제구역 골목길에 차들이 3중으로 주차해 있다. 골목길이 좁아 다른 차들은 지나 갈 수 없는 상태다.(상단) 주택 앞에 주차금지라는 표지를 세웠지만 주차 공간이 없어 다른 주민이 그 앞에 차를 세웠다.(하단)사진=뉴스토마토)
◇장위13구역, 뉴타운 대신 도시재생 추진
장위1동 뉴타운은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로 지난 2005년 발표됐다. 2008년부터 행정절차가 시작됐고 2013년 사업시행이 났었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사업성이 떨어지자, 장위1동에서 부지가 가장 넓고 언덕이 높은 장위 13구역은 올해 뉴타운 개발구역에서 해제됐다.
성북구는 뉴타운 사업 대신 다른 방법으로 장위13구역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했다. 전체 주택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20년 이상 노후 주택과 뉴타운 추진 과정에서 생긴 주민 갈등을 풀어야 했다. 그 방안으로 성북구는 서울시 '도시재생시범사업'을 신청했고 최근 선정됐다.
서울시와 성북구는 장위13구역에 향후 4년간 100억원을 투자한다. 투자금을 바탕으로 성북구는 장위 13구역에 ▲세대통합 커뮤니티 설치·마을 도서관 건립 ▲주거지역 빗물공동체 운영 ▲고령친화마을 조성 ▲차없는 거리 조성 ▲마을일꾼 협동조합 운영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 중 주민들이 가장 원하고 있고 동시에 가장 어려운 과제가 주차와 도로 문제다.
◇"차 피할 곳도 없어" 도로 문제 심각
장위13구역에는 차 두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는 넓이의 골목길 옆으로 다세대 주택, 빌라들이 밀집해있다. 이 때문에 좁은 골목길 한 쪽은 주차장으로 사용된다. 길의 나머지 부분은 사람과 차가 같이 다니기도 비좁다.
주민인 임서경(가명·52세)씨는 "사람이 차를 피하기 위해 벽에 붙어도 차에 치이는 일이 잦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가뜩이나 좁은 길을 이용하는 일은 일부 주민들의 주택 불법 확장과 시유지 무단 사용으로 더 힘들다. 임 씨는 "건물 중에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 확장시킨 건물이 있어 도로가 더 좁아졌다. 차로 지나가기도 버겁다. 또 동네 주변 음식점들이 시유지를 주차장으로 쓰고 있어 동네로 차가 들어오기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서울시가 장위13구역의 주차·도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가장 원하고 있다. 이우영 장위1동 주민센터장도 "이 구역에서 주차와 도로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또 해결책을 찾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성북구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당 한 개의 부지를 매입해 주차장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미 다세대 주택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빈 부지가 부족하고, 기존 건물과 땅을 매입해 주차장을 만들 경우 주차문제 해결에만 많은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3월에 주차장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용역 조사가 시작된다. 이를 통해 해결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주차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오더라도 이를 시행하려면 풀어야 될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지하주차장을 건설 방안이 결정되더라도 주변 건물 주민들이 진동·소음·분진 등을 이유로 반대할 수 있다. 김태우 장위1동 민원행정팀장은 "주민들이 다 다른 입장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위 13구역 주민들 "뉴타운 해제, 아쉽지 않다"
장위13구역과 들곶이로를 사이로 둔 장위2구역은 뉴타운 공사를 시작했다. 이 곳은 현재 철거가 대부분 완료됐다. 장위13구역 주민들은 서울 안에서 큰 길과 인접한 새아파트에 살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는데 아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 곳에서 임대업을 하는 조혜정(가명·55세)씨는 "집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뉴타운 해제를 원했다. 나 같은 경우에도 뉴타운 개발을 하게 되면 지금 건물 대신 아파트 1세대만 받을 수 있었다. 아파트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없으니 차라리 지금처럼 월세 받고 사는 편이 났다"고 말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임종현(가명·64세)씨는 "사람들이 뉴타운 구역이라고 하면 판자촌을 생각하는데 이 동네에는 멀쩡하고 허물기 아까운 집들이 더 많다. 교통 문제를 빼면, 살면서 불편한 점이 없다"고 말했다.
장위1동은 강남이 개발되기 전인 1970년대까지 강북의 부촌이었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크고 깨끗한 단독주택들이 많이 남아있다. 면적이 66만㎡ 이상인 북서울 '꿈의 공원'도 인접해 주변 환경도 좋다.
개발 열기가 약한 것은 주민 연령대와도 관련이 있다. 장위1동 13구역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현두 대표는 "나이가 많은 집주인들은 그냥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 뉴타운 보상금이 평당 700~800만원 밖에 안 되니 집을 팔아도 서울 안에서 이사를 갈 곳이 없다. 뉴타운 개발로 떠돌아 다니는 것보다 살던 곳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29일 장위2구역은 철거 작업이 마무리 단계다. 곧 건설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스토마토)
◇주민들, 난개발 없애고 지하철 원해
주민들이 뉴타운은 원하지 않았지만 개발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현두 대표는 "지역 내부에 빌라를 신축하려는 공터가 있다. 그런데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아 궁금해하는 주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장위13구역을 지구 단위로 개발하기를 원하는 주민들도 있다"며 "뉴타운 같은 대규모 개발은 어렵지만, 토지주들의 난개발을 막고 구역 특성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계로를 지나는 서울 경전철 동북선을 일반 지하철로 상향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월계로에 경전철역 2곳이 생긴다. 장위1동은 지하철역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불편한데 경전철역이 생기면 이런 불편은 크게 줄 것이다. 월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주민들은 경전철을 일반 전철로 바꿔달라는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인 박재경(가명·61세)씨는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경전철보다 지하철이 훨씬 크다. 지하철이 지역을 바로 지나면 자연적으로 지역이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북구청은 장위13구역 도시재생시범사업을 신청하면서 소수의 주민들이 참여한 소규모 공청회만 열었다. 대다수 주민들에게 도시재생시범사업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북구는 올해부터 사업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올해에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면 지역 커뮤니티 조성을 먼저 하게 된다. 커뮤니티가 조성되면 구청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쉬워 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얻은 주민 의견은 성동구가 도시재생시범사업 세부 계획을 만드는데 참고가 될 예정이다.
◇29일 장위1동 13구역 공터에서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다. 이 공터는 빌라 신축을 계획 중이지만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았다.(사진=뉴스토마토)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