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은 서울에서 불법 흡연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지난해 초부터 10월 30일까지 서초구에서 흡연 단속에 걸린 사람은 1만4811명. 두번째로 많았던 송파구(1686명)보다 약 9배 많고 서울 전체 단속 건수(3만1697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서초구 내에서도 불법 흡연이 많은 곳이 남부터미널과 고속버스터미널이다. 같은 기간 동안 두 곳에서 단속된 불법 흡연 건수는 각각 5500건, 4000건이다. 승객들이 장거리 버스를 타기 전이나 내린 후 담배를 많이 피우기 때문에 흡연자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2일 서초구 남부터미널 주변 금연 거리. 이 곳은 지난해 하루 평균 18명이 불법 흡연으로 단속됐다.(사진=뉴스토마토)
◇담뱃값 오르자 판매자·흡연자 모두 고통
그런데 지난 1일부터 담배 가격이 2000원 오른 후 두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2일 남부터미널에서 불법 흡연을 단속하는 서초구청 담당자는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밝혔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뿐 아니라 담배 판매도 줄었다.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터미널 1층에만 담배를 파는 곳이 5곳이나 된다. 그 중 한 곳의 주인인 A씨는 "어제 하루 동안 담배를 2갑 팔았다. 오늘은 오전 동안 한갑도 못 팔았다. 아직 가격이 안 오른 던힐 담배가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만 있다"고 말했다.
경부선 터미널 담배상인들은 몇 달 동안은 담배가 안 팔릴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담배 판매점 주인인 B씨는 "정부가 담배 가격을 올린다고 발표 한 후 소비자들이 담배를 사재기 해뒀다. 사람들이 모아둔 담배를 다 피우기 전까지는 담배 판매를 포기했다"고 전망했다.
B씨는 담배 가격 인상 발표 후 힘든 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담배를 한 갑씩만 팔도록 규제했을 때는 터미널 담배 가게들을 돌면서 한갑씩을 사서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얼굴을 기억한 B씨가 담배를 팔지 않으려고 하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언론에서 담배 판매점들이 담배를 숨겨놓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가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담배 판매업자들 "'사재기' 오해 억울"
B씨는 "그런 뉴스가 나온 후 숨겨둔 담배를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났다. 술을 먹고 와서 욕을 하고 위협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서워서 밤에 일찍 가게를 닫아야 했다"고 말했다.
B씨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담배 물량은 줄고 담배를 사는 사람은 늘어나서 담배가 없는건데, 마치 담배 판매자들이 모두 사재기를 하는 것처럼 보도한 기자들이 원망스러웠다"고 덧붙였다.
필사적으로 담배를 사재기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취재 중 만난 C씨는 은퇴 후 아들에게 용돈을 받고 살고 있다. 담배를 60년 동안 피웠다는 C씨는 "담배 5보루를 모아뒀다. 담배 살 돈을 마련하려고 점심은 편의점 컵라면만 먹었다"고 털어놨다.
그토록 어렵게 담배를 모은 이유를 그는 "아들도 자식들 키우느라 힘든데, 담뱃값 올랐다고 용돈을 더 달라는 말을 어떻게 하나. 그래서 담배 가격 오르기 전에 모아두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5보루를 다 피우고 담배를 끊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C씨는 "노력은 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지금보다 담배를 줄여서 용돈을 아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또 "정부가 담배 끊기 어려운 걸 이용해서 서민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려고 담뱃값을 인상했다"고 정부에 불만을 나타냈다.
◇2일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전경. 담배를 파는 상점이 1층에만 5곳이다. 그런데 지난 1일 담배 가격이 오른 후 담배 판매가 줄어 상인들은 울상이다.(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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