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머니께서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정 트리오에 관한 책을 추천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그는 나에게 말 그대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가 지휘하는 서울 시향의 신년 음악회를 갈 때마다 항상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니의 음악회에서 그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새삼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정성스레 녹음한 그의 첫 피아노 독주 앨범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클래식 앨범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서울 시향 내부에서 벌인 일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노조를 없앤 것’이었다. 노조를 없애는 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노동자로서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고, 본인의 입맛에 맞게 오케스트라를 끌어 가겠다는 것과 같다.
오케스트라는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개개인이 출중한 연주 실력을 갖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만 잘하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서로 뽐내기만 하다가 연주는 엉망이 되어버리고 만다. 서로의 소리를 들으면서 맞춰가야 한다. 그렇기에 오케스트라 내에서는 소통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소통을 차단하는 행위를, ‘조화’의 상태로 구성원들을 이끌어 가야할 임무를 지닌 ‘지휘자’가 한다면 진정성 어린 연주는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그의 행동 중 하나는, 프랑스와 한국을 넘나드는 사이에 돌변하는 그의 태도였다. 프랑스에서 그에게는 인사에 관한 그 어떠한 고유의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급여도 서울시향에서 받는 것의 약 1/3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분고분 그들의 규칙을 따랐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의 모습은 프랑스에서 보였던 태도와는 정 반대였다. 한국에서 정명훈은 갑이고자 했고, 실제로 갑이었다.
정명훈으로부터 촉발한 이번 일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웠다. 개인차가 있지만, 사람들이 지닌 한 가지 공통적인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갑에게 너무 쉽게 굽힌다. 감히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다. 어떤 분야의 일인자라고 해도, 그것은 그 분야에 한해서만 최고인 것이다. 그 일인자가 그 능력을 벗어나는 영역에서 특권을 누리려는 데 대해 우리는 단호해야 한다.
지휘자 정명훈의 공연에 감동을 받았던 만큼, 이번 일을 접하면서 인간 정명훈에게 느낀 아쉬움은 더 크다. 언제쯤 갑-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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