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65) 전 국무총리의 첫 재판에서 '증거 제출'을 두고 이 전 총리와 검찰이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향후 전개될 증거능력에 대한 치열한 다툼의 전초전인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엄상필) 심리로 22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전 총리 측 이상원 변호사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이 과연 수사과정에서 작성된 자료 일체인지 의문"이라고 공세를 폈다.
또 "언론보도 등으로 알려진 일부 진술자들의 진술조서가 첨부 안된 것이 있는데 다른 증거나 조사자료가 있다면 변호인이 그 부분도 열람·등사를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공판 진행과정에서 추가로 제출될 증거가 있다면 그 부분은 진술자들의 신빙성 판단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열람·등사 이유를 덧붙였다.
2013년 4월4일 오후 4~5시경 부여 선거 사무소에서 이 전 총리가 금품을 받은 혐의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자금수수 혐의를 부인한다"는 입장만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현재 제출된 자료들이 수사기록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며 일부 제출되지 않은 증거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증거목록에 의해 다 확정됐고 수사기록이 다 있다"며 "수사기록 목록 가운데 요청하면 열람·복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맞받았다.
또 "공여자가 사망해 조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육성을 토대로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물적 증거를 찾아내고 관여자들 진술을 확보해 공소사실을 확정했다"면서 "시간경과나 외부 요인으로 인해 기억이 흐려지거나 오염될 수 있다"며 신속한 재판 진행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첫 공판준기비일부터 양측이 증거를 두고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한 것은 '공여자 없는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라는 이번 사건의 특수성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의 경우처럼 핵심증거의 원진술자가 사망하면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특신 상태'에서 행해졌다는 점이 입증돼야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 전 총리의 경우 '전달자'가 없고 '목격자'만 있기 때문에 함께 기소된 홍준표(61) 경남도지사보다 혐의 입증이 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목격자의 진술만으로 재판부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유죄를 확신하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향후 재판에서 이 전 총리가 성 전 회장을 독대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 금모 씨, 운전기사 여모 씨, 이 전 총리 측 자원봉사자 등의 진술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날 재판부는 공판준비기일에서 모든 증거를 확정하고, 공판기일이 시작된 이후 제출하는 증거는 채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다음 공판준비기일이 열리는 다음달 8월31일 전까지 입증계획을 사전에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형사재판 피고인은 공판기일에는 반드시 출석해야 하지만 공판준비기일에는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전 총리는 재보궐선거를 앞둔 2013년 4월4일 충남 부여 선거사무실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현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고 "성 전 회장에게 불법자금을 받은 사실이 결코 없다"며 줄곧 혐의를 부인하다 취임 두 달여만에 결국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한편, 이날 재판을 위해 새로 선임된 이 변호사를 두고 이목이 집중됐다. 이 변호사는 서울고법 판사 출신으로 박철언 전 장관의 첫째 사위이기도 하다. 검찰 특별수사팀 부팀장을 맡았던 구본선 대구 서부지청장과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다.
오는 23일에는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홍 지사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 5월15일 새벽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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