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1급 고위간부가 비정규직 여직원을 상대로 수개월간 성추행을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사측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형사 고소하고 3개월, 사내 성희롱 고충처리위원회에서 징계가 의결되고 3주가 지나서야 중앙인사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2일 LH 노동조합과 경찰이 사측에 통보한 공무원범죄 수사상황에 따르면, LH 고위간부인 A씨는 여직원 B 씨의 특정 신체부위를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고, 강제로 신체를 접촉한 혐의(성폭력범죄특례법 위반)로 지난 6월까지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경찰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1건에 대해서만 검찰에 기소(불구속) 의견을 제출했다.
무혐의 처분된 피의사실은 함께 술을 마신 뒤 B씨의 집 앞까지 따라가 강제로 입을 맞추고(2014년6월), 짧은 치마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B 씨에게 무릎 위에 놓인 손을 치우라고 한 뒤 강제로 사진을 찍고(2014년8월), 식사 중 B 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강제로 끌어안고(2014년9월), 자신의 집무실에서 엉덩이 등 B씨의 신체부위를 만진(2014년6~10월) 혐의 등이다.
이들 혐의는 B씨의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당사자 간 진술이 엇갈려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으로 분류됐다. A씨도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문제는 혐의가 입증된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행위다. B씨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9월 한 음식점에서 테이블 밑으로 디지털카메라를 넣어 B씨의 다리와 허벅지 등을 몰래 촬영했다. 이 혐의는 B씨가 A씨의 사과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다만 A씨는 이후 진행된 사내 성희롱 고충처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사진을 촬영한 것은 음식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내려놓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후 상황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1일 위와 같은 내용의 수사상황을 통보했고, 사내 성희롱 고충처리위원회는 참고인 조사 등을 거쳐 같은 달 29일 징계를 의결했다. 그런데 징계를 최종 결정하는 인사위원회는 다시 3주가 지난 오는 17일에야 개최된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4조 1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이 확인됐을 때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해 징계나 그에 준하는 조치를 내려야 한다.
LH 관계자는 “입증된 혐의만 해도 굉장히 중범죄다. 더욱이 지난달 고충처리위원회에서 조사 후 해임을 의결했는데, 최종 징계까지 또 3주의 여유를 둔다는 건 가해자에게 인사위원들을 회유할 시간을 주는 것”이라며 “이사들 사이에서 ‘조용히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데, 이건 성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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