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작전’하듯 교과서 국정화 몰아붙이는 여권, 그 속내는
치열한 여론전, 정부여당 “주체사상 미화” vs 야권 “독재와 친일 미화”
내년 총선 ‘박근혜 정권 심판론’ 대신 ‘이념과 진영’ 구도로 끌고 가나
2015-10-25 15:05:03 2015-10-25 15:05:03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여야의 ‘교과서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정화 드라이브를 강력히 걸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장외여론전을 통해 저지선을 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2일 ‘2017학년도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전환’을 행정예고한 후 후속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행정절차법에 의하면 예고 후 20일 동안 여론수렴 기간을 거쳐 최종 확정하지만 정부는 이미 국정화를 기정사실화한 모양새다.
 
정부는 행정예고 다음날인 13일 국무회의에서 44억원의 예비비 편성을 결정, ‘교과서 전쟁’의 실탄을 마련했다. 국회통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예비비는 보통 재난상황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긴급한 사유’에 한해 편성되지만 정부는 아직 정식 확정되지도 않은 사업을 위해 예비비를 편성한 것이다.
 
교육부는 14일 광고비로 5억여 원을 집행했고 행정자치부도 각 시도에 공문을 내려 지역 정례반상회에서 ‘올바른 국사교과서’를 홍보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오는 27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직접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의지를 재차 강조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홍보전에 분주하다.
 
새누리당도 적극 동조하고 있다. 13일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전국에 내걸었던 새누리당은 “주체사상을 미화하는 현재 교육은 역적행위”(22일, 김무성 대표) “역사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국회는 민생에 집중하자”(24일, 원유철 원내대표)라면서 ‘이념’과 ‘민생’의 쌍끌이 여론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정부여당의 홍보공세에 야권은 “독재와 친일미화 교과서는 안 된다”며 공동대응하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 보신각에서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3자연대’가 각종 한국사 교과서를 비교할 수 있는 ‘진실과 거짓’ 체험관 개막식에 참석했다.
 
26일 새정치연합은 안중근 의사 의거 106주년 기념일을 맞이해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한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는 27일 저녁엔 정치권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광화문광장에서 ‘국정화 말고 국정을 부탁해’라는 이름의 문화제를 함께한다. 28일에도 국회에서 ‘만민토론회’가 예정돼 있는 등 여론전 맞불을 놨다.
 
한편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정부여당의 국정화 강행은 결국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추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선거공학적으로만 따져보면 국정화 정국이 여권에 굳이 불리할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보통 정권 후반기에 열리는 총선은 ‘정권심판’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즉 박근혜 정권의 공약이행여부, 국정수행능력, 민생경제성적과 같은 것들이 주된 이슈가 돼야하지만, 국정화 이슈가 지속되면 그런 문제들은 뒷전에 밀리고 ‘이념과 진영논리’가 강화돼 여권지지층이 집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 대구와 경북(TK), 강원도는 확실히 여권이 가져갈 수 있다. 충청권도 ‘반기문 대망론’ 등을 띄우면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다만 수도권에서의  일부 타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 내 국정화 반대목소리가 수도권 지역인사들을 중심으로 나오는 것도 그 차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이재오·정병국·정두언·김용태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은 공개적으로 “교과서 좌편향은 문제지만 교과서 국정화는 시대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정화에 부정적인 수도권 민심을 고려한 발언이 아니겠냐는 해석이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 서울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대통령기 이북도민체육대회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올바른 국정교과서가 시작이다’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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