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분노 조절 장애가 급증하는 이유
2015-11-25 06:00:00 2015-11-25 06:00:00
소아정신과 전문의 김태훈 '사랑샘' 원장
최근 뉴스를 보면 '묻지마 폭행', '보복 운전' 등 홧김에 무고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들을 과거에 비해 많이 볼 수 있다. 대다수가 자신의 감정을 순간적으로 다스리지 못해 극단적인 화를 표출하는 모습으로,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도발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모습들은 어느 때부터인지 '분노 조절 장애'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볼 때 '분노 조절 장애'란 진단명은 없다.
 
일반인들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을 충동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충동 조절 장애' 중 하나로도 생각할 수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충동 조절 장애'는 간헐적 폭발 장애, 발모광, 절도광, 병적 도벽 등을 말한다. 이중에서 분노 조절 장애에 가까운 것은 '간헐적 폭발 장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간헐적 폭발 장애는 성격적으로 대인관계가 어렵거나 분노가 폭발하기 전 긴장도 또는 각성 상태가 증가되는 등의 특징들을 보여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반복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충돌 조절 장애'를 분노 조절 장애라고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충동 조절 장애는 자신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나타나는 모습이기 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해 보이는 공격성과 거리가 멀다.
 
정신과 외래 진료를 하게 되면서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것이 우울증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환자 대부분이 우울하다기 보다는 "자주 화가 욱하고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삶에 즐거움이나 의미 없이 어쩔 수 없이 사는 것 같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이런 환자들은 인생에 즐거움이 없으니 행복할 수 없고 별다른 뜻 없이 한 말에도 짜증이 나 결국 화를 내게 된다. 이런 것들이 쌓이게 되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분노가 폭발한다.
 
주목할 점은 현재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과거 보다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1위인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자살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는 것은 우울증 환자가 다른 나라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환자는 아니지만 우울한 사람이 다른 나라 보다 많다는 의미도 된다. 기분은 전염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듯이 우울한 사람 마음속에서는 배려라는 양식이 많이 부족하다. 또 어렵고 힘든 상황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내적 자산이 고갈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점차 누적되고 이로 인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사소한 일에도 늘 화가 나 있다가 결국 순간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가 폭발한다. 초보 운전자에게 화를 내고 심하면 보복운전을 하는 일, 눈에 거슬린다고 초면인 사람을 집단 폭행하는 일이 많아진 것은 우리나라 전체가 우울한 분위기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분노 조절 장애'가 요즘 많아진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앞서 말했듯이 기분은 전염된다. 우울한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 듯 기분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른바 '분노 조절 장애'의 근원적 해결방법은 개개인의 우울감을 먼저 떨쳐버리는 것이다. 우울감으로 꽉찬 마음의 곳간을 온전히 비우고 배려라는 양식을 가득 채워보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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