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성재용기자] 아파트 분양시장에 과잉공급 우려가 확산되면서 한동안 뜸했던 '선시공 후분양'제 활성화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투기수요를 부추기는 '선분양 후시공'제 탓에 공급 밀어내기가 계속되고 그 결과 2년 뒤 입주물량 폭탄과 이에 따른 집값 폭락이라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무분별한 공급을 제어하고 실수요 위주로 주택시장을 개편할 수 있는 후분양제 활성화가 필수라는 주장이다.
선분양제는 착공 단계에서 입주자를 모집해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 건설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계약금과 중도금 규모가 대체로 주택가격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건설사는 금융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제도는 대규모 주택공급이 필요했던 1970~80년대 허용된 것으로, 당시 국내 건설사들과 금융기관들이 부족한 자금을 아파트 선분양을 통해 입주자들의 납입금으로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건설사는 물론, 집값을 여러 차례 나눠 낼 수 있는 입주자 입장에서도 초기 금융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분양기간도 30개월가량 소요되는 공사기간 내내 진행할 수 있어 미분양률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특히 과거에는 주택수요가 많았던 만큼 입주시점에 자산가치가 더 높아졌기 때문에 선분양제는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았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해외에서도 주택에 대한 선구매권을 사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완공도 되기 전 주택가격의 80%를 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완성품이 없는' 제품을 미리 사는 것이다 보니 여러 문제도 발생했다.
장밋빛 전망을 내세운 광고 문구나 잘 꾸며진 견본주택의 모습만 보고 집을 구입했다가 부실시공, 설계·마감재 변경 등으로 법정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실제 완공된 주택과의 괴리가 적지 않았기 때문.
공사 도중에 시공사가 도산이나 부도라도 나면 그 피해는 수분양권자에게 고스란히 넘어갔다. 이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했지만, 오롯이 받아들지 못 한 경우도 있었다.
주택 완공시까지 가격이 많이 오를 경우 분양권 불법 전매 등 투기과열이 조장되거나 각종 분양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 역시 선분양제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반대로 조성될 것으로 기대됐던 것들이 무산 또는 취소되면서 입주시기에 집값이 분양가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피해 역시 수분양자 몫으로 남게 된다.
후분양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성규 대진대 교수(법학)는 "아파트 공급정책이 1970~80년대에는 원활한 주택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 2000년대 이후에도 과거와 동일한 선분양 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지는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분양이 주로 건설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이 강했다면 후분양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착공 후 공정률이 80% 정도일 때 분양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지어진 집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요지다.
실제로 작년
GS건설(006360)이 성동구 금호13구역을 재개발해 공급한 '신금호 파크 자이'는 입주를 1년 앞둔 시점에 분양을 진행했다. 단지 조성이 어느 정도 진행된 만큼 저층에 본보기집을 마련해 고객들이 실제 외관뿐만 아니라 채광과 방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마감재 변경 등 앞서 선분양으로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부분에 대한 불안을 낮추면서 당시 평균 24대 1의 경쟁률로 1순위에 마감됐으며, 정계약 시작 사흘 만에 완판됐다.
반면, 건설업체의 신용도에 따라 자금을 마련해야 돼 대규모 주택공급이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중소건설사들이 분양시장에서 설 자리가 더 없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또 완공 직전 시세가 적용될 경우 건설사의 금융비용이 분양가에 반영돼 선분양에 비해 집값이 비싸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때문에 전문가들 역시 큰 틀에서 후분양제 활성화에 공감하지만, 그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권대중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오랜 세월 지속된 선분양제에 길들여져 있는 만큼 점진적으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주택시장 패러다임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됐지만,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무리하게 후분양제를 활성화하면 시장이 되레 죽을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장은 "선분양제를 없애면 청약제도 자체가 무너져 재원이 사라진다"며 "후분양제 활성화는 시기상조라고 본다. 부동산 정책 전반에 대한 검토를 거쳐 후분양제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공급 과잉 우려가 확산되면서 '후분양제' 활성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말 분양된 한 아파트 견본주택. 사진/뉴시스
성재용 기자 jay11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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