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사업지원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한 사업체가 보조금 채권을 담보로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지자체 보조금 지급 실무 책임자가 보조금을 대부업자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정했더라도 약정서에 지자체장 직인이 아닌 실무책임자의 개인 도장으로 날인했다면, 지자체는 보조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대부업자 윤모(69)씨가 충북 진천군과 진천군 보조금 지급 책임자인 공무원 김모(59)씨를 상대로 “약정금 6억7200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양수금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진천군과 김씨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진천군에 대한 청구부분은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직원을 통해 진천군 소속 공무원으로부터 해당 기업에게 보조금 지급계획이 있는 것은 맞지만 보조금 채권은 양도하거나 금전차용 담보가 될 수 없다는 답변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던 점, 김씨가 채권양도양수 계약서 등에 날인하면서 진천군수 직인이 아닌 개인 도장을 날인하고 그 장소도 군 사무실이 아닌 해당회사 사무실이었던 점, 이렇게 작성된 계약서가 적법한 것인지 등을 진천군에게 확인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지자체가 특정사업을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이 채권양도 대상이나 금전차용 담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도 통상 있는 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김씨가 작성한 이행각서에는 지급 불이행시 민형사 책임을 지겠다고 기재됐으나 이런 내용의 각서는 공무원의 통상적인 업무사항이 아님을 원고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런 사정들을 종합하면 원고로서는 김씨의 보조금 지급 보증 행위가 직무권한 내에서 적법하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알 수 있었음에도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했다고 봐야 하고 그렇다면 김씨의 행위는 국가배상법 상 지자체가 배상해야 할 공무원의 직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진천군으로서는 배상책임이 없다”며 “이와는 달리 진천군에게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진천군은 2011년 3월 쌀 가공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W영농조합법인에게 공장건립 사업비 6억72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는데 W사 대표 신모씨는 그해 6월 윤씨에게 사업자금 6억7000만원을 빌리면서 진천군으로부터 받을 예정이었던 보조금 채권을 담보로 넘겼다.
이에 앞서 윤씨는 자신의 직원을 통해 진천군 공무원에게 W사에 보조금 지급 계획이 있는지 등을 문의한 결과 '지급 계획이 있는 것은 맞지만 보조금 채권을 담보로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신씨가 “그 직원은 잘 모른다. 윗사람하고 얘기가 다 됐다”고 하자 돈을 빌려줬다.
이후 김씨가 윤씨에게 채권 양도양수계약 승낙서와 W사에게 지급될 보조금을 윤씨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하면서 ‘진천군(소관 : 농업지원과 유통팀장)’이라는 자신의 직책 옆에 자신의 이름과 개인도장을 날인해줬다.
그러나 신씨가 윤씨로부터 빌린 돈 대부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차용대금 상환기일이 넘도록 보조금 지급이 안 되자 윤씨가 김씨와 진천군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김씨의 계약서 등 작성행위가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의 직무행위라고 보고 윤씨가 신씨에게 실제로 빌려준 돈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윤씨로서도 김씨 말만 듣고 돈을 빌려주고 별다른 확인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김씨의 책임을 70%, 진천군의 책임을 50%로 각각 제한하면서 김씨는 4억670만원을, 진천군은 김씨와 연대해 2억90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2심 역시 1심 판결을 유지하되 윤씨가 신씨의 공장을 강제경매해 얻은 배당금 상당액을 제한금액을 김씨와 진천군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진천군과 김씨가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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