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정해훈 기자
용산 개발사업 과정에서의 뇌물수수 등 의혹을 받고 있는 허준영(64) 전 코레일 사장이 5일 두 번째로 검찰을 찾았다. 이번에는 서울중앙지검 조사실이 아닌 서울고검 기자실이었다. 하지만 현재 피의자 신분인 사람을 기자실 안으로 들일 수 없는 취재진은 서울고검 청사 앞 주차장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허 전 사장을 맞이했다.
허 전 사장은 첫 검찰 소환 때와 마찬가지로 준비된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억울함과 결백을 호소했다. 대부분 소환자가 조사실로 가기 전 혐의에 대한 취재진의 물음에 "인정하지 않는다", "성실히 답변하겠다" 등 짧은 대답을 하거나 심경을 간단히 말하는 것과 달리 지난달 31일 소환 당시 허 전 사장은 메모를 꺼내 읽었다.
첫날 작은 메모보다 훨씬 큰 A4 용지를 낭독한 허 전 사장은 많아진 분량만큼이나 검찰 수사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치게임의 희생자', '3류 정치공작' 등의 다소 자극적인 단어를 내놓으면서 이번 수사는 한국자유총연맹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로부터 비롯된 자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의 모함이란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연맹 선거를 자세히 모를 수 있는 취재진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의 불법 선거개입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별첨 자료도 세심하게 마련한 허 전 사장은 음모의 한가운데 현 연맹 회장이 있다고도 지목했다. 친박(親朴)이 아니란 이유로 자신은 파렴치한 범죄인으로 몰려 이 자리에 섰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제기된 의혹에 대한 명쾌한 답변보다는 권력의 표적이 됐다는 이유를 먼저 내세운 허 전 사장의 이날 방문은 아쉬움이 남았다.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폐기물업체 W사 운영자 손모씨는 안전요원으로 고용했을 뿐 잘 모른다고 대답했으며, 제기된 혐의도 부인하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답변은 피해 답답했다.
국민과 용산 주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용산 사업을 살리려 했다는 하소연은 이날도 이어졌고, 단군 이래 최대 규모였다는 이 사업이 왜 부도가 났는지 그 과정을 취재하는 것이 더 낫다는 훈수까지 뒀다. 급기야 한 기자는 "우린 산업부 출입이 아니니 혐의에 대해서만 묻겠다"고 말을 끊기도 하는 등 허 전 사장의 해명은 개운치 않았다.
검찰은 전날 허 전 사장을 뇌물수수와 정 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의 희생양이라는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혐의가 있다는 검찰의 주 장이 맞는지는 당장 내일(6일) 법원의 영장실질심 사에서 판가름 나게 된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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