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지난해 9월 열린 tvN '신서유기' 제작발표회에서 취재진 앞에 선 이수근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끊임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재밌는 멘트를 남기는 이승기, 은지원과 반대로 이수근은 다소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자신을 섭외해 비난을 받은 '신서유기' 제작진에 미안해했고, 여전히 자신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여론을 의식한 듯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중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인데 '반성'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방영된 '신서유기'에서도 그는 완전히 적응한 느낌은 아니었다. '신서유기'로 복귀한 이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긴 했지만, 화제성은 이전만 못했다.
이수근. 사진/JTBC
그런 이수근이 최근에는 '활동 중단'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은 모양새다. JTBC '아는 형님', tvN '신서유기2', KBS2 '동네스타'에서 그가 보여주는 매력은 상당하다. 특히 중간중간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상황극에서 그가 보이는 순발력과 유머 감각은 큰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아는 형님' 강예원 편에서 옷을 벗으면서 선보인 콩트 연기는 '아는 형님'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며, 많은 네티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레드벨벳 편에서 멤버 조이에게 "조이야, 니가 피던 담배 하나 줘봐"라고 말하는 장면 역시 조이의 예능감까지 더해지면서 명장면의 반열에 올랐다. 이 외에도 이수근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이용한 재기발랄한 멘트에 힘입어 '아는 형님'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아는 형님'을 연출하는 최창수 PD는 "이수근은 '콩트의 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하다. 짧은 순간에 최고의 애드리브와 연기력을 선보인다"며 "현장에서 느껴지는 바로는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은 것 같다"고 칭찬했다.
최근 방송된 '신서유기2'에서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있다. 지난 26일 공개된 방송에서 강호동이 느닷없이 "중국어가 안 되면 호동스쿨 닷컴"이라고 광고 패러디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황을 이어받으며 주특기인 중국어 강의를 선보였다. KBS2 '개그콘서트'에서 오랫동안 훈련한 콩트 연기가 여기저기서 빛을 발하고 있다. 강호동에게 구박 받으면서도, 그를 '디스'하는 캐릭터 연기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 역시 시선을 끈다.
이수근. 사진/tvN
이수근의 유머는 자신뿐 아니라 그간 하락세를 면치 못해온 강호동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복귀 후 KBS2 '우리 동네 예체능' 외에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강호동은 '아는 형님'과 '신서유기' 시리즈에서 이수근과 함께 브로맨스 콤비를 선보이며 최근 트렌드에 부합하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소위 '옛날 개그'라고 비판받아온 특유의 '과잉 리액션'에서 벗어나 솔직하면서 마초적인 느낌의 애드리브를 선보이고 있다. '아는 형님'과 '신서유기'에서만큼은 강호동의 진가가 뚜렷하게 보인다. 본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는 이수근의 영향력 역시 적지 않아 보인다.
약 2년 간의 자숙기간을 끝내고 용기를 내 대중 앞에 섰던 이수근은 "쉬는 기간 동안 방송이 제일 그리웠고, 그걸 못하다 보니까 많이 힘들었다.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곰곰이 생각했는데, 웃음을 주는 일이었다. 예전보다 더 좋은 모습, 더 웃긴 모습을 보인다면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수근이 더 이상의 실수 없이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유지한다면, 대중들도 더욱 자연스럽게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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