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여가문화의 확산으로 해외 여행객 수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반면 여행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법적 규정은 미비해,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아웃바운드(여행객 해외송출) 여행업체인 하나투어는 해외에서 사망사고를 당한 고객과 피해보상 문제로 다툼 중이다. 지난 1월초 하나투어의 세미패키지(패키지+자유여행) 상품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떠난 가족에게 불상사가 덮쳤다. 바나나보트를 타던 중 보트가 두 자녀를 덮쳐 아들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딸은 간 파열과 요추골절의 중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피해자 측은 언론을 통해 “하나투어가 병원 예치금을 납부하지 않아 입원이 늦어졌고, 여행 경비만 돌려줬다. 현지 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며 6개월 넘게 보상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며 특히 “현지 가이드가 ‘파도가 있지만 방조제가 있어 안전하다’고 바나나보트를 권유했다”고 하나투어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투어 측은 “사고 즉시 병원에 바로 입원시켰고 본사 관계자도 현지에 급파해 상황을 관리했다”며 “이번 일은 자유일정 도중 현지 리조트의 여행상품을 고객이 선택해 즐기다 일어난 사고로, 리조트 측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책임을 돌렸다. 또 “문제의 현지 가이드는 정식 가이드가 아니고 자유여행 중 호텔 수속 등을 도와주는 대행인”이라며 “그 사람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고객들이 바나나보트 관계자 말을 듣고 상품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공항을 이용한 여행객이 역대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많은 여행객이 긴 줄을 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피해자 측은 ‘당사는 여행출발 시부터 도착 시까지 당사 또는 그 고용인, 현지여행업자 또는 그 고용인이 과실로 손해를 가한 경우 책임을 진다’고 명시된 공정거래위원회 ‘국외여행 표준약관’ 제8조를 들어 하나투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 여행약관에 법적 효력이 없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해당 약관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약관 20조에도 “계약의 해석에 관해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여행사 또는 여행자가 합의해 결정하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 관계법령 및 일반관례에 따른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관계법령은 어떨까.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 ‘해외여행’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공무국외여행규정’만 검색된다. ‘관광’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할 경우 ‘관광진흥법’에 관광객 피해 보상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 해당 규정에는 “관광사업자는 해당 사업과 관련해 사고가 발생하거나 관광객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하거나 영업보증금을 예치해야 한다”며 보험 관련 항목만 나와 있을 뿐이다.
하나투어 측은 “여행자보험에 관련된 부분은 이미 처리했다”며 “피해자들이 지난 4월부터 변호사를 선임해 별도의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어 법정다툼 중”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업계는 이번 일에 대해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현존 규정들이 과거 여행 가이드가 따라붙는 풀패키지 상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자유여행객(FIT)이 대세인 현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정식 가이드가 있는 상황에서 사고가 터지면 여행사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그러나 자유시간에 발생하는 일까지 책임지라고 하면 여행사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차라리 법적으로 관련 규정이 정비됐으면 한다”며 “지금의 규정은 결국 고객과 여행사가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라는 이야기 밖에 안된다”고 관련 규정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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