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노동연구원 연구위원과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 고용노동부 장관 등을 역임한 노동전문가다.
지난해 5월 기관장으로 친정에 복귀한 방 원장은 고용노동정책의 미래로 눈을 돌려 각종 포럼을 준비 중이다. 고용 분야에서는 기술의 변화와 일자리의 미래를 주제로 한 정책포럼, 노사관계 분야에서는 노사·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노동포럼을 계획하고 있다.
요즘 방 원장의 가장 큰 고민은 한국의 노사관계 발전방향이다. 지난 27일 세종시 국책연구단지 내 노동연구원 원장실에서 만난 방 원장은 효율성이라는 경제적 가치와 노동이라는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지난 27일 세종시 국책연구단지 내 노동연구원 원장실에서 진행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열악한 수준이다.
고용지표는 잘 알려진 대로 청년·여성 관련 지표들이 떨어지고, 노동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 또 우리나라는 은퇴 후 노후소득 준비가 굉장히 안 돼있는 나라다. 노인빈곤율이 50%에 육박하는데 이건 굉장히 큰 숙제다. 이로 인해 은퇴연령도 늦어지고 있다. 노후소득을 보장을 위한 제도가 빈약하니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스스로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답변대로 고용지표에선 청년·여성, 그 중에서도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청년실업을 단기적 문제로 봐선 안 된다. 구조적으로는 산업수요에 안 맞는 고급인력 공급이 과잉 공급되면서 수급 불일치가 발생하고, 공급 측면에서는 경기불황 등으로 투자활동이 위축돼 일자리 자체가 많이 안 만들어지고 있다. 또 1990년대 후반부터 기업들이 경력직 위주로 채용하다 보니 사회 초년생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청년실업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고용노동부의 정책만으론 한계가 있다. 정부에서 각종 세제지원과 인센티브를 줘도 결정권은 기업이 쥐고 있다. 경제부처와 산업부처의 협조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론 우리나라의 기업가 정신이 많이 침체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적극적인 리스크 테이킹(위험감수)이 필요한데 기업들은 단기수익 확보에 치중한다. 단기수익을 늘리려면 비용부터 줄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기술혁신이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선 연구개발(R&D) 투자, 제품혁신의 여지가 많다. 또 이런 투자들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진다. 특히 비용절감만으론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없다. 과감한 혁신이 곧 부가가치다.
-노동력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해외진출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했던 일이 있는데, 진출국의 인건비가 올라가는 데 대한 기업인들의 우려가 크더라.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나라들을 보면 인건비가 저렴하고 노사분규가 적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소득이 오르면서 노동자들의 의식수준도 높아졌다. 과거엔 그냥 넘어갔던 일도 이젠 연대를 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다른 신생국으로 옮겨갔더니 또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건 인식의 문제다. 인도네시아 갔다가 베트남 갔다가, 이젠 또 아프리카로 갈 것인가? 사회가 발전하면 당연히 노사관계가 복잡해진다. 노동력을 비용절감의 수단으로만 활용하려 들면 매번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동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음을 물론, 사람을 쓸 준비도 안 돼있는 것 같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도 심각하다. 근본적으론 첫 일자리의 질이 너무 낮기 때문에 일을 쉽게 그만두게 되고, 재취업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 단계에서는 불합리한 차별 해소가 중요하다. 그나마 양성평등은 과거와 비교해 많이 진전됐다. 문제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월급이 250만원, 300만원이 된다고 해도 아이를 맞길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제도적 문제도 있다. 공공부문의 경우 전체 여성인력의 10~15% 정도는 항상 출산·육아휴직 상태다. 그렇다면 정원의 110~115%를 뽑아도 공급과잉이 아니다. 그런데 정원은 항상 고정돼 있다. 그럼 비숙련 계약직을 대체인력으로 써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업무효율이 떨어진다. 결국 출산·육아휴직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도 이런 상태인데 민간은 어떻겠나.
-2~3년 내에 대부분의 베이비붐 세대가 현직에서 은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을 수용하기에는 일자리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2013년 정부 일자리사업 현황을 파악해보니 예산이 대부분 불용이었는데, 유일하게 초과 집행된 사업이 숲 가꾸기 등 베이비부머를 위한 사회공헌 일자리사업이었다. 급여수준이 높지 않음에도 장년층들이 사회공헌 일자리에 몰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저소득층은 먹고 사는 게 절박하기 때문이고, 연금 등 소득이 있는 중간계층은 사회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유지하고 싶어서다. 단기적으론 정부나 자치단체가 사회공헌형 등 일자리를 많이 늘려줘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일자리사업만으론 한계가 있을 것 같다.
근본적으론 오래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피라미드형 조직구조를 고쳐야 한다. 피라미드 구조에선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줄어든다. 결국 누군가는 물러나야 한다. 반면 병렬형 직무체계에선 승진을 못 해도 전문성을 살려 오랫동안 생산적인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평생교육과 직업훈련, 재훈련, 직무재설계 등 끊임없는 기회 제공이 필요하다. 대신 일하는 사람도 일정 부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맡게 될 업무에 따라 임금이 줄어들 수도 있는데, 자존심 상한다고 직장을 그만두면 본인에게 손해다.
-청년·여성, 장년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환경이 좋지 못 하다.
고속도로를 예로 들면 우리나란 하이패스를 늘리면서 인력을 줄인다. 그런데 일본도 그렇게는 안 한다. 되도록 고령층을 위한 일자리로 남겨두려 한다. 또 선진국은 전체 취업자 중 공공부문 종사자 비율이 10% 이상인데 우린 2% 수준이다. 우리는 사람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게 선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게 선인가.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발달로 제조업 분야에서 로봇의 인력 대체가 늘어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특히 로봇 대체율이 높다. 우리나라는 효율성이라는 경제적 가치와 일자리라는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너무 한 쪽 사고에 치우쳐져 있다.
-결국 가치와 의식수준의 문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지.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은 파생수요라는 인식이 강하다. 투자가 이뤄지고 제품이 생산되면 그때서야 노동이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선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선진국들의 헌법이나 법률을 보면 국민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와 기업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을 쉽게 안 자르고, 이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니 노동조합도 우리만큼 경직적이지 않다. 스웨덴은 ‘국가는 홈(home)’이라는 게 국가 철학이다. 우리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임은석 기자 edor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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