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들 "블랙리스트는 '예비 학살자 명단'"
전국 시인·소설가·사진가 등 집단 움직임
2016-10-18 16:06:10 2016-10-19 08:25:55
[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소문만 무성하던 '블랙리스트'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은 문화예술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18일 오전 10시 광화문 광장에 모인 문화예술인 100여 명은 현 정권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면서 국회 청문회를 통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사퇴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오른 김창규(62) 시인은 "문화예술인들은 몸으로 말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며 "청와대를 비롯해 관련 책임자들은 사퇴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과거 소설가와 시인 선배분들처럼 저항이란 단어에 깃발을 꽂으며 민주주의 정신과 정의를 부르짖는 양심적인 작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시백 소설가는 "연탄가스가 새어들 때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가스 경보기’ 같은 게 작가의 운명"이라며 "가스 경보기 입을 가로막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냐"며 경고했다. 
 
이어 "박근혜가 생각하는 문학은 귓가의 달콤한 말만 들려주는 것일지 몰라도 작가의 책무는 우리 사회에 닥쳐올 위기를 예민한 더듬이로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진행된 기자회견에 앞서 문화예술인들은 저마다의 전문성을 살려 풍자 그림 그리기와 깃발 넋전춤, 박근혜 정부 근조 공연 등을 이어나갔다. 
 
18일 오전 10시 광화문 광장에서 임옥상 화가가 취재진들에 둘러싸여 자신이 입을 의상에 ‘Black List'라는 문구를 적고 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기자회견장 곳곳에서는 젊은 문화예술인들도 눈에 띄었다. 평론가로 활동 중인 조재연(27)씨는 현 정부가 이중적이라고 진단했다. 조씨는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것이 창조경제이면서 동시에 문화 육성인데, 정책 방향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일부 대중문화에만 국한돼 추진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이 정치의 한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것 같아 참담하고 배신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김씨와 함께 기자회견장을 찾은 정현석 작가(22)는 이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성과주의가 만든 폐단이라고 지적했다.
 
정씨는 "블랙리스트라고 해서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성향을 분석한다던가 조사를 해서 만들었는 줄 알았는데,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던가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만든 건 기준도 모호하고 마구잡이식 결과물"이라고 평했다.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문화예술계 대표적 원로 인사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이번 블랙리스트를 ‘예비 학살자 명단’이라고 규정했다. 백 소장은 “현 정권은 후안무치한 정권”이라며 “1만여 명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공작정치를 하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한마디로 예비 학살 학살자 명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이 땅에 불우한 문화예술인 1만여 명을 학살하겠다고 공약 했냐”고 물었다. 
 
이번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황당하다는 노승택 사진작가는 “저는 과거 선배들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일도 없는데, 어마어마한 명단에 이름이 올려졌다”며 “제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반성해 본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현 정권이 우리들의 이름을 수집했다면 우리는 이 정권에서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한 사람의 명단을 수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인들은 향후 다양한 통로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블랙리스트 문제와 예술 검열 반대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한편 이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문화예술인들의 정부비판 목소리는 전국 각지에서 진행됐다. 이날 서울을 비롯해 세종민예총은 세종시 문화체육부 앞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했고, 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작가회의는 각각 나주와 부산에서 비판 목소리를 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기자회견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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