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정경부 기자
금년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고발건을 의결하기 위해 지난 26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한 장면. 오전 9시46분에 시작된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된 후 8분 만에 끝났다. 산회 후 다른 의원들이 자리를 떠나는 와중에 새누리당 민경욱 의원은 한동안 자리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위 ‘친박’으로 분류되는 그는 다른 의원이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 한동안 상념에 잠긴 모습이었다.
같은 시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분위기는 달랐다. 의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이어지고, 의총 사회를 본 김해영 의원의 인사말에 박수와 함께 “잘생겼다”는 환호까지 터져나왔다. 박용진 의원 등이 옆자리 의원들에게 ‘그만 웃으시라’며 제지하기 전까지 이같은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두 장면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요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 게이트로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기에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거둘 것만은 자명해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상승세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아직까지 갈피를 못잡고 있는 사이 민주당은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유념할 점이 있다. 지금 상황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새누리당도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든 국면 반전을 위한 방안을 궁리 중일 것이다. 혹자는 역으로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 보였던 새누리당이 최순실 게이트를 털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날 기회가 왔다’는 말도 한다. 한 치 앞이 안보이는 우리 정치권 생리를 감안하면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주당이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웃음짓다가 패착한 경우, 사실 오래전 일도 아니다. <한겨레> 김의겸 선임기자는 지난 5월 쓴 칼럼에서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152석을 확보해 1당이 된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숍 가는 길은 왁자지껄했다. 마지막 날에는 기자들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여흥이 벌어졌다. 이를 본 유시민 의원은 불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유 의원의 불안한 예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됐다. 그 해 연말, 이른바 4대개혁 입법이 좌절되면서 열린우리당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금의 민주당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호재를 만났다고 들뜨는 것은 하수다. 고수들은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가다듬는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다윗 왕은 보석 세공사에게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는 ‘승전의 기쁨에도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적인 상황에도 좌절하지 않게 하는 글귀’를 새기라고 지시했다. 고심하던 세공사가 솔로몬 왕자에게 조언을 구해 얻은 답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에,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수없이 되뇌이는 대로 최순실 게이트는 그것대로 대응하는 한편 민생문제에 천착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수권정당’의 길에 한걸음 다가가는 길 아니겠나.
최한영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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