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국내 프로스포츠계도 한숨을 쉬고 있다. 프로스포츠 발전에 쓰일 구단 돈줄이 최순실씨의 불순한 의도로 설립된 미르·K스포츠재단에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는 현 정부가 줄곧 강조해 온 스포츠산업 성장과 에이전트제(대리인제) 활성화에 전면으로 배치된다.
최순실씨의 여러 의혹 중 스포츠계가 꼬집고 있는 건 미르·K스포츠재단으로 들어간 기업자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독대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진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는 모두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국내 4대 프로스포츠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이 때문에 기업 투자가 절대적인 국내 프로스포츠 판이 위축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특히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행보가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14년 야구, 축구, 농구, 배구단을 계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으로 넘기며 "스포츠 구단 자생력 강화"를 외쳤다.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운영 자금은 그룹 차원에서 책정한다. 이번 미르·K스포츠재단에 삼성이 총 204억원(미르125억원·K스포츠79억원)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스포츠계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테니스와 럭비팀을 해체했는데 1년 예산이 10억 안팎인 종목으로 분류된다. 이런 팀은 정리하면서 미르·K스포츠재단엔 거금을 내놓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의 프로스포츠단 제일기획 이관 이후 삼성 라이온즈(야구)와 수원삼성(축구)은 투자를 대폭 줄여 하위권으로 올 시즌을 마쳤다. 한 구단 관계자는 "프로스포츠 투자를 늘려달라고 계속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거금을 올바르지 않은 곳에 썼다는 사실에는 씁쓸한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던 정책도 엇박자를 내긴 마찬가지다. 김종 전 차관 주도로 문체부가 밀어붙이던 프로스포츠 에이전트제(대리인) 활성화도 당장은 물 건너갔다는 평가다. 정부는 올해 초 프로스포츠 산업화 안을 내놓으면서 에이전트제도 육성을 미래 먹거리인 스포츠산업 활성화의 첫 단추로 꼽았다. 최근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승부조작으로 몸살을 앓자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그 안에 에이전트제 활성화를 넣어 논점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그 정도로 문체부의 에이전트제 활성화 주장과 논리는 강력했다. 시행 규정이 있는 프로야구부터 활성화해 점진적으로 프로스포츠 전반에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에이전트제도가 발달해야 마케팅과 홍보 영역까지 활성화돼 산업적인 육성이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에이전트제의 발전은 국내 프로스포츠 판을 더욱 키워야 한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에이전트 제도가 선수 권익을 보호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만 자생력이 떨어지는 국내 프로스포츠에서는 당장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모기업 투자가 줄어들면서 프로스포츠 투자금액이 쪼그라드는 마당에 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될지는 의문"이라며 "당장은 적절한 투자로 자생력을 키우고 그다음에 에이전트 제도를 통한 산업적 측면을 도모해야 하는데 프로스포츠 판 자체가 엉뚱한 돈에 휘둘린 감이 있다"고 진단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구단 모기업의 투자금을 빨아들이면서 그 어느 해보다 쌀쌀한 스포츠계의 겨울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지난 9월29일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로 800만 관중을 돌파한 서울 잠실야구장 관중석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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