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의 개정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상위법인 헌법은 대한민국의 최고 가치기준으로, 우리 사회 기본질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담았다. 그 국민적 합의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기간에 변화가 없었겠나.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기준 세우기는 필수다.
다만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개헌논의를 보면 우려가 앞선다. 마치 ‘제왕적 대통령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인양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개편에만 온 관심이 쏠려있다. 그 틈을 타서 “제도가 나쁘지 사람이 나쁘냐”는 식의 주장도 나온다.
대통령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현행 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에도 동의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하고 그 후폭풍이 전방위적으로 우리 사회를 뒤흔든 배경에는 현행 헌법이 있다. 그러나 있는 헌법마저 무시하고 국정을 농단한 것이 과연 시스템만의 문제인지는 의문이다.
특히 개헌 논의에 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우려는 더욱 커진다.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정부를 세운 현행 헌법의 구조를 보면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먼저 규정한다. 이어 국민의 대표인 입법부, 국회에 대한 규정이 나오며, 그 뒤에서야 정부와 대통령이 나온다. 과연 이 순서에 의미가 없을까. 권력구조 개편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개헌에 앞서 지난 세월 무너진 민주공화국의 기본을 바로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제도, 사회 양극화를 고착화 시키는 재벌 대기업의 경제권 남용, 그 밑에서 신음하는 국민의 노동기본권, 금력과 권력에 약한 검찰의 기소권 독점, 일반 시민을 간첩으로 둔갑시키고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보원 등 법률로도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산적하다. 아니 이런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지 못하면 그 어떤 헌법이 만들어져도 문제는 또 발생한다.
과거 독재자 이승만·박정희와 그 추종세력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나라의 근본인 헌법을 자기들 입맛대로 재단해 마음대로 바꿨다. 수년마다 국가의 기본규칙이 변경됐다. 그나마 국민들의 변화 요구를 수용해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가장 긴 시간을 버텼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국민 권리를 먼저 세우고 권력구조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 기초공사가 제대로 안 된 건물은 쉽게 무너질 뿐이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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