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갑질 이어온 시대의 참혹함 그렸다”
장편소설 '공터에서' 출판간담회
2017-02-09 08:00:00 2017-02-09 0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아버지는 1910년 우리나라 망해서 없어지던 해에 태어났고 저는 정부수립이 됐던 1948년에 태어났습니다. 두 숫자가 우리 부자 생애의 운명적인 좌표처럼 찍혀버린 것이죠. 저나 저의 아버지나 그 시대의 참혹한 피해자였습니다.”
 
소설가 김훈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6년 만에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낸 그는 이번 소설이 자신과 아버지 세대에 관한 소설임을 강조하며 “주로 그 시대의 역사적 하중을 견딜 수 없어 세상 바깥을 떠돌거나 미치광이가 됐던 인물들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소설은 1910년생 마동수와 그의 두 아들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훑는다. 일제시대 상해에서 떠돌다 광복 이후에 돌아오는 마동수와 괌 등지를 떠도는 장남 마장세, 괴로운 조국의 현실 속에서 발붙이고 살며 고초를 겪는 차남 마차세의 이야기가 소설의 뼈대다.
 
“나와 나의 아버지 세대가 살아온 일을 쓰고자 했습니다. 처음엔 긴 글을 쓰고 싶어 5권 정도로 생각했어요. 근데 기력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많은 부분을 갖다 버렸습니다. 쓴 것보다 못쓴 것이 많았습니다.”
 
소설 집필 중에는 당대의 신문을 많이 챙겨 봤다. 당시의 사회면을 보면서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70년 동안 이어져 온 유구한 ‘갑질’의 전통이었다.
 
저자는 “1·4 후퇴 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50만명이 줄 지어서 피난 가는데 그 사이로 군관용차가 응접세트나 피아노를 싣고 먼지를 날리며 질주해가더라”며 “내가 이런 나라의 후예구나 싶었고 그때의 야만과 폭력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갑질의 유구한 전통이 이어져 최근 광화문 광장의 함성도 나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또 “연말에 혼자 ‘관찰자’의 입장으로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 집회와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집회 양쪽을 살폈다”며 “태극기와 성조기, 십자가를 보며 반공을 외치던 시절이 생각났고 해방 후 70년 동안 엔진이 공회전 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제목 ‘공터에서’에 이런 시대적 의미도 담겼다고 했다. “공터는 주택과 주택 사이에 버려진 땅이잖아요. 역사적인 구조물이나 시대가 안착될 만한 건물이 없는…돌이켜 보면 나와 아버지는 마치 가건물에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번 광화문 광장에 가서도 느꼈죠. 몇 일 살면 또 헐어버릴 가건물에서 지금까지 산 것 같아요.“
 
소설가 김훈이 지난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해냄출판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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