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최기철기자] 박근혜 대통령을 10일 파면한 헌법재판소가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자발적인 것이 아닌 강요에 의한 출연으로 보면서 향후 검찰의 대기업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소추 사유는 탄핵심판 선고 전 헌법전문 법률가들이 '세월호 7시간'사건과 함께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릴 것이라고 예상한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별개 의견 없이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을 내긴 했지만 검찰 수사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공소유지와 관련해 기업이 강력한 방어의 근거로 쓸 여지가 있다. 더욱이 지난 9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가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에서는 헌재의 이번 결정을 향후 긍정적인 방어막으로 주장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박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두 재단이 설립된 이후에도 출연 기업들은 재단의 운영에 관여하지 못했다. 피청구인으로부터 출연 요구를 받은 기업으로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업 운영이나 현안 해결과 관련하여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등으로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어 "피청구인이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공권력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과 요건을 법률로 정하고 공개적으로 재단을 설립했어야 했다"며 "그런데 이와 반대로 비밀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 하여금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봤다.
헌재의 이런 판단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낸 대기업들을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범이 아닌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해석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앞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대가로 두 재단에 출연했다며 이 부회장을 구속하는 등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출연을 강조한 특검팀 수사 결과와도 배치된다. 오히려 특검에 앞서 이 부분을 수사하며 대기업들이 강요를 받았음을 인정한 기존 검찰 특별수사본부 1기 조사 결과와 같다.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특검팀의 이 부회장에 대한 공소유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지원한 롯데, KT, 현대차 등을 수사할 특수본 2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미 총수가 구속된 삼성 측은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두 재단을 지원했다"라고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부회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 부회장이 뇌물이 아닌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지만 앞으로 최씨와 박 전 대통령 사이에서 뇌물혐의를 벗으려면 이번 헌재 결정처럼 기업경영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는 논리로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비슷한 다른 기업들도 헌재의 이번 결정을 토대로 같은 논리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형사재판이 아닌 헌법재판인 탄핵심판의 고유한 성격상 헌재의 이번 판결은 박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개별적인 사안까지 따지지 않아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검팀 관계자는 이날 "(뇌물죄 부분 과 관련해서는)현재 기소돼 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이므로 일부러 언급을 하지 않은 것 같다. 공소유지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읽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최기철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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