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지난 3월29일 리스본조약 제50조 규정에 따른 유럽연합(EU) 탈퇴를 EU측에 통보했다. 테레사 메이(Theresa May)총리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를 팀 바로(Tim Barrow) 주EU영국대사가 도날드 투스크(Donald Tusk)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에게 전달했다. 이로서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확정한 EU탈퇴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고, 2년 시한의 협상이 마무리 되면 2019년 3월 이후 EU를 떠나게 된다. 영국의 EU탈퇴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고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신용대 건국대학교 상경대학 석좌교수의 분석을 통해 알아본다.(편집자)
본격적인 탈퇴협상, 독일 총선 끝난 9월 이후
EU측 투스크 상임의장은 영국 정부의 탈퇴통지를 접수이후 48시간 이내에 EU의 협상 정책 초안을 마련하고, 영국의 EU탈퇴에 따른 EU국민, 기업 및 회원국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수습방안(damage control)'을 마련하는 것이 협상의 가장 큰 목표임을 강조했다.
투스크 상임의장은 이 초안을 토대로 각국의 의견을 취합해, 4월29일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 정상회의에서 영국과의 협의를 위한 EU의 기본방침을 결정하게 된다. 또한 유럽이사회에 이어 유럽의회에서도 협상 기본방침을 둘러싼 심의와 표결을 예정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에 협상권한을 부여하는 규제방안도 작성돼 5·6월 중 EU각료이사회에서 동 지침을 채택하게 된다.
탈퇴협정의 체결은 유럽의회의 단순과반수에 의한 동의와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 정상회의에서 가중다수결로 결정한다. 그런데 본격적인 협상은 9월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4월 중순 부활절 휴가, 4월23일(1차투표)과 5월7일(2차 결선투표)에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 협상중단이 예상된다. 6월에도 프랑스 새 정부의 윤곽이 들어나는 6월 11·18일 하원 선거를 기다려야한다. 특히 엠마누엘 마크론 후보나 마린 르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 대통령의 출신 정당과 의회 다수파가 엇갈려 동거정부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7·8월 여름휴가가 지나고 가을에서야 탈퇴협상이 재개되게 된다. 이때에도 독일의 연방의회선거가 변수다. 9월24일 치러지는 독일 선거는 정권교체 가능성도 있으며, 또한 상당한 접전이 예상돼 연립협의가 장기화될 우려도 있다. 실제 협상은 EU집행위원회가 중심이 돼 이루어지게 되지만, EU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일과 프랑스 양국의 정치변화로 인해 2017년에는 탈퇴협상이 크게 진전되기 어려울 수 있다. 영국정부는 3월30일 EU탈퇴에 따라 EU법을 영국법으로 대체하는 법안(The Great Repeal Bill)을 발표하고 5월경 의회 심의를 시작하게 된다.
협상의 핵심쟁점 ① : EU 탈퇴협상 우선 vs 영국 탈퇴·신협정 동시협상
협상의 핵심쟁점 ② : 탈퇴비용, 새로운 무역협정, 금융단일 여권 및 북아일랜드 국경통제 등
EU측은 탈퇴통지 이후 양측의 통상관계와 외교·치안 등 다양한 협력관계를 마련하기 위한 협상(탈퇴 및 신협상)에서 탈퇴협상을 우선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탈퇴협상에서 ▲영국이 이미 출연을 약속한 EU예산과 관련된 경비의 정산 ▲영국에 거주하는 EU시민, EU에 거주하는 영국시민의 권리보호에 관한 동의 ▲북아일랜드·아일랜드, 지브롤터(Gibraltar)·스페인의 국경관리(EU탈퇴 후 북아일랜드 및 지브롤터를 통해 물건이나 사람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을 관리하는 방안) 등이 선행적으로 협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탈퇴협상을 먼저 추진하자는 EU측의 주장은 바르니에 브렉시트 수석대표(EU집행위원 및 프랑스 외무장관 역임)를 필두로 제기됐고, EU가 마련한 브렉시트 협상초안에서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영국 정부는 타협점을 모색하기 위해 탈퇴협상과 신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동시에 전체적으로 진행하자고 주장한다. 메이 총리는 “새로운 관계 협의는 조기에 타결해야 할 우선 과제”라며 탈퇴협상이 끝나기 전 신협정 논의도 함께 시작하려는 뜻을 전했다. 다만 영국측도 협상 순서를 둘러싼 의견대립에 따른 시간낭비를 피하기 위해 일단 EU측의 주장을 수용해 탈퇴협상을 먼저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협상이 어떤 절차를 밟든 쟁점은 많다. 첫째, 탈퇴비용문제다. 이와 관련해 협상은 처음부터 대립이 예상된다. EU측은 탈퇴 이후의 무역관계 등을 둘러싼 협상에 앞서 영국이 이미 약속한 EU의 복수년도 예산 분담, EU의 관료에 대한 연금지급, 채무위기시 아일랜드에 대한 금융지원 약속액 등을 포함해 모두 600억 유로의 지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영국측은 EU측이 요구하는 금액 대부분이 탈퇴 이후에는 지급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영국 국가예산의 약 7%에 상당하는 금액을 ‘탈퇴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은 정치적 어려움을 수반한다. 지난해 6월 국민투표에서 영국국민이 EU탈퇴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영국의 EU예산 분담금에 대한 불만이었다.
메이 총리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회원국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합의에 도달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협상 난항이 불가피하지만, 결국 영국이 EU측이 요청한 금액의 일부를 지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갈 것을 의미한다. 또한 최근 영국이 프로젝트별로 예산분담금 기여를 시사하고 있어 향후 협상안으로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
둘째 EU와 FTA 등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문제다. 영국은 EU단일시장에서 탈퇴하되, 이민제한과 금융부문의 EU여권제도를 포함해 EU의 역내시장 접근을 보장받기 위해 노르웨이나 스위스 방식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마찰 없는 형태로 EU와의 무역관계 유지를 바라고 있다.
해먼드 재무장관은 영국 의회에서 EU와 포괄적인 FTA가 실현되지 않으면, 영국은 법인세의 대폭 인하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EU측은 영국의 국민투표실시 이전부터 일관되게 EU가 추구하는 사람, 상품, 서비스 및 자본 등 4대 부문의 자유화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단일시장 접근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EU시민, EU에 거주하는 영국시민 권리보호문제도 여기에 포함된다.
자유무역협정은 협상에서 발효기간까지 최대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EU나 영국 모두가 협상이 장기화되는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경제 불확실성을 어떻게 줄여 가느냐가 관건이다.
셋째, 금융부문의 EU단일여권제도에 관한 문제다. 영국은 EU탈퇴 이후에도 EU와 새로운 포괄적 FTA 체결로 금융업 및 투자서비스업분야에서 EU단일여권제도를 존속시켜 ‘가능한 한 자유로운 거래’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틀을 기반으로 할 때, 영국에서 EU의 금융서비스 제공의 자유도가 좁아지고 안정성도 저하될 우려가 있다.
또한 단일여권의 인·허가에는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영국이 발행한 여권을 이용해 오던 금융기관은 영국과 EU와의 협의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프랑크푸르트, 파리, 암스테르담, 룩셈부르크 및 더블린 등으로 분산될 수 있다. EU는 영국에 비해 금융센터기능을 대체하는 능력, 규제 및 세제 면에서의 우위성, 감독기관에 대한 신뢰감 등의 종합능력에서 아직은 떨어져 자칫 EU금융시장의 약체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EU는 내년 1월 금융규제 개정을 통해 역외은행 등이 EU금융시장 접근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EU는 금융 및 전문서비스의 두꺼운 집적을 형성하고 금융 감독면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가진 영국과 적절한 협력방안을 도출해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영국과 EU 모두 글로벌 경쟁의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넷째, 북아일랜드의 국경왕래문제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간의 국경문제는 사회문제로 매우 중요하다. 국민투표 이후인 2016년 9월 데이비스(David Davis) 탈퇴담당 장관은 ‘엄격한 국경조치(hard boader)’는 없다는 입장이다. EU측에서도 바르니에 브렉시트 수석대표가 국경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8년 평화협정까지 30여년간 계속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도에 의한 무력충돌의 재연되지는 않겠지만, 현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불안에 따른 정부 부재로 정책협의의 정체와 영국 정부와의 관계 악화가 우려된다. 북아일랜드는 정치불안의 장기화로 인해 자치권한이 박탈되거나, EU탈퇴 협의 일환으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와의 국경관리가 어떤 형태로든 부활하게 된다면, 영국으로부터 독립과 아일랜드 재통합을 목표로 움직임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협상기간 장기화로 세계경제 불확실성 증가 위험
탈퇴협상기한은 원칙적으로 정식통지에서부터 2년으로 2019년 3월29일까지다. 각국 의회와 유럽의회 승인절차에 반년 남짓한 시간이 필요한 것을 감안하면, 내년 10월 말까지 실질적인 협의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나 주어진 기간 안에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앞에서 설명한대로 탈퇴협상과 신협정 체결 협상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 탈퇴비용에 대한 입장차이, EU 회원국들의 선거 일정에서 오는 협상타이밍 불일치 등의 협상 지연요인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영국측의 협상관련 전문인력 부족과 준비미흡도 협상의 장애가 될 수 있으며, 북아일랜드 국경왕래문제나 스코틀랜드 독립문제 등도 탈퇴협상과정에서 영국의 발목을 잡아 협상을 지연시킬 수 있다.
한편 EU측에서는 EU집행위원회가 탈퇴협상을 담당하지만, 유럽이사회와 유럽의회의 참여과정에서 협상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나타날 수 있다. 무엇보다 EU정치의 최대과제인 EU 안에서 일고 있는 EU 회의주의와 포퓰리즘의 확대에 제동을 걸고 단일시장을 지키고 싶다는 이념과 회원국 간의 이해 충돌이 최선의 협상결과 도출을 막을 위험이 있다.
이와 같은 요인을 감안할 때, 많은 전문가들은 2년의 협상기한 안에 EU와 영국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의 도출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국을 제외한 EU회원국의 만장일치의 찬성이 있다면 협상기한을 연장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협상에서 입장이 약한 영국이 많은 것을 양보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IMF는 이미 지난해 4월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탈퇴 협상과정의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가 지역차원과 세계적 수준에서 심각한 손상을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했다.
영국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정책 변화와 중국의 수요동향 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지만, 영국의 EU탈퇴에 따라서 급격한 자본유출요인이 발생한다면 세계금융시장이 동요할 위험성이 크다. 영국의 EU탈퇴 협상과정에서 EU와 영국의 대립으로 협상이 장기화된다면 자칫 글로벌 리스크를 재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유로존에도 악재로 받아들여져서 유로화 환율의 불안정과 유로화 자산가격의 하락압력이 강해져 세계경제에 나쁜 영향을 가중시킬 수 있다. 주어진 협상기간 안에 당사자인 영국과 EU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불확실성이 최소화되는 협상안 도출을 기대한다.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가 6일 런던을 방문한 EU의 도날드 투스크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총리 관저 문 앞에서 맞이하던 중 투스크 의장의 귀엣말을 듣고 있다. 영국은 '평행' 식, EU는 '단계'식의 브렉시트 협상을 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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