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대우조선해양(042660)·
현대중공업(009540)·
삼성중공업(010140) 등 이른바 조선 빅3 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산·경남 지역에 위치한 조선·해양 협력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수백개의 중소협력업체들은 폐업하거나 도산했다. 살아남은 중소기업들도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통영과 거제의 대표적인 조선·해양산업 협력 업체 2곳을 방문해 그 실상을 들여다봤다.
청암산업 야적장에 작업이 완료된 부재들이 쌓여있다. 선반이 휑해 보일 정도로 작업 물량이 없다. 사진=뉴스토마토
"작업물량 4분의1 토막…직원도 대부분 내보내"
지난 27일 경상남도 통영에 위치한 청암산업. 삼성중공업 협력사로 선박 내부에 들어가는 부재를 가공해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다. 정연면 청암산업 대표는 올해부터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다. 1996년 4월 경남 통영에 설립된 청암산업은 조선업이 호황을 맞아 물량이 넘쳐났을 때는 70여명의 직원들이 쉴 새 없이 공장을 가동했다. 이후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한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도 최대한 직원들을 지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물량이 더욱 급격하게 줄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 대표는 "이달부터는 관리·지원 인력을 없애고 전원 생산직으로 19명만 남게 됐다"며 씁쓸해 했다. 그러면서 "전직원이 공장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덧붙였다.
청암산업이 공장 두 곳에서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은 2500톤 규모다. 물량은 지난해 12월 2000톤대가 무너지더니 올 1월 1000톤대 마저 붕괴됐다. 가장 최근 집계된 수치인 지난 3월 물량은 573톤에 불과했다. 이 회사 생산능력의 23% 수준이다. 매출도 급감했다. 지난해 5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지만 올 1분기 매출 추이를 감안하면 30억원에 못 미칠 가능성도 크다. 정 대표는 "호황기에는 제발 대출 좀 받아달라고 애원하던 은행들이, 지금은 추가 대출은커녕 기존 대출금 상환 독촉만 하고 있다"며 "금리를 조금 낮추든 대출금 상환을 유예해주든 금융권도 최소한의 도움을 달라"고 호소했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으로 승부수 띄워
통영시와 함께 국내 조선·해양산업의 메카로 꼽히는 경상남도 거제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거제시는 인구 25만여명 가운데 5만여명이 조선업 관련 종사자다. 이들의 가족들까지 더하면 절반 이상이 생계를 조선업에 의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가 찾은 칸정공도 이들 기업 중 한 곳이다. 칸정공은 삼성중공업의 사외 협력사로 선박 구조물 등을 제조하는 업체다.
지역 경기를 묻는 질문에 박기태 칸정공 대표는 "이곳 상황은 언론에 보도되는 것보다 훨씬 안 좋다"며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추가 대출을 알아보러 은행에 가봐도 오히려 말도 안 되는 고금리 조건을 들이밀고 기존 여신 상환 압박만 받고 온다"며 "그나마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책자금 등을 지원 받아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신사업 진출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중진공 정책자금을 지원 받아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뛰어 들었다. 먼저 소수력, 즉 작은 수력발전 시설의 핵심부품인 터빈을 제작해 수출한다. 아울러 '스마트 태양광 가로등'도 개발해 수출하고 있다. 국내 고속도로에 설치된 200W(와트)급 가로등과 성능은 비슷하지만, 이 회사의 가로등은 120W로 전력소모가 적다는 게 특징이다. 또 하루 2~3시간만 충전하면 3일간 가로등을 밝힐 수 있다. 자기 진단 시스템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연동 돼 유지관리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현재 뉴질랜드와 호주에 각 20개씩 샘플이 공급된 상태다.
칸정공은 기존 회사의 강점을 극대화하며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알루미늄 제품의 경쟁력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박 대표는 "독점 공급하는 제품이 5개가 있다"며 "독점이란 뜻은 우리만 만들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다른 업체에 비해 가장 경쟁력이 높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알루미늄 기술력을 바탕으로 어선, 경비정, 레저용 선박 등 다양한 선박 제조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현재 전체 매출의 85%에 이르는 삼성중공업 의존도를 낮추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한다는 방침이다. 박 대표는 "선박 구조물을 만들다보니 가로등 같은 구조물을 만들 수 있게 됐고, 알루미늄을 연구하다보니 알루미늄 선박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그 동안 조선·해양 분야에서 우리가 잘 했던 부분을 타 분야에 적극 접목 시키겠다"고 말했다.
여론의 싸늘한 시선에 서운함도 드러냈다. 박 대표는 "조선·해양업에 종사한다고 하면, 마치 우리를 무슨 범죄자 쳐다보듯 한다"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예나 지금이나 꿋꿋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거대한 선박에는 수많은 중소기업의 피와 땀이 배어 있음을 알아 달라"고 당부했다.
칸정공이 생산하는 해양플랜트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구조물. 사진=뉴스토마토
거제·통영=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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