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저 건물 안에 제 ‘소중한 권리’가 있어요. 도둑맞지 않으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역대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사전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일부 시민들은 노숙도 마다치 않고 사전투표함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4·5일 이틀간 실시한 사전투표 이후 지역별 사전투표함은 전국 251개의 관할 구·시·군 선관위에서 보관 중이다.
하지만 혹시 모를 사전투표함 바꿔치기 불안감에 많은 시민들이 사전투표함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섰다. 개표부정 의혹은 18대 대선 직후 바로 불거졌다. 대선무효 소송도 제기됐다.
최근 방영된 18대 대통령선거 개표 조작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플랜'도 한몫했다. 부정투표감시 시민단체인 '시민의 눈'에 따르면 '더플랜' 공개 이후 사전투표함 지킴이 신청 시민 수가 3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6일 오후 5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선거관리위원회 건물 밖 한쪽에는 마스크를 한 시민 등 8명이 모여 있었다. 이날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239㎍까지 오르며 ‘매우나쁨’ 단계를 보였다. 부정선거 감시단 ‘시민의 눈’의 회원이기도 한 이들은 ‘내 지역구는 내가 지킨다’는 목표 아래 휴일도 반납해가며 사전투표함을 지켰다.
현재 동대문구 선거관리위원회 건물 2층에는 동대문구 사전투표함 28개에 투표용지 30만4972개가, 3층에는 성동구 사전투표함 34개에 투표용지 25만9009개가 각각 보관돼 있다. 두 지역의 경우 시민 200여명이 2~5명씩 조를 이뤄 사전투표함이 옮겨진 지난 4일부터 사전투표함이 개표장으로 이동하는 오는 9일까지 감시를 이어간다. 아울러 지역 선관위 동의를 받아 사전투표함이 보관된 장소의 봉인상태나 외부 사람들의 출입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벙커1에서 시민의 눈 1차 사전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시민의 눈
사전투표함 지킴이로 나선 시민 최희원(41·여)씨는 “‘더 플랜’을 보고 배신감이 너무 커서 정말 많이 울었다”며 “촛불집회 참가 이후 이번 대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많은 고민을 했다”고 사전투표함을 지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사전투표일 첫날밤 투표함을 지키며 뜬눈으로 지새운 시민 원영진(55)씨는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등이 쌓여 결국 선거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졌다”며 “19대 대선에서는 이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잃어버리면 경찰서에 가서 찾을 수라도 있지만 내 권리를 도둑맞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현행 선거제도의 시스템과 선관위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측면이 크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사전투표함은 CCTV로 24시간 찍고 있고, 보관장소에 사람이 왔다 갔다 하거나 투표함의 이동이 있다면 언제든지 확인이 가능하다”며 “선관위는 선거에 대한 공정성과 안전성, 보안성을 담보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전투표함 지킴이로 참여한 시민들은 현행 선거제도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정미(37·여)씨는 “유권자들이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부분이 있다면 선관위가 해소하면 된다”며 “자동개표기도 조작될 가능성이 0.1프로라도 있으면 사용하지 않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유세빈(39·여)씨는 “굳이 투표함을 이동시켜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투표와 개표를 한 장소에서 진행하고, 모든 선거과정이 제 손과 눈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시민의 눈에 따르면 현재까지 거소투표 참관인과 사전투표함 지킴이, 개표 참관인 등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시민은 전국에 총 5만3000여명에 이른다. 지금도 시민의 눈 홈페이지에는 ‘미처 몰랐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신청합니다’ 등 추가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권성선 시민의 눈 대변인은 “현장에서 시민의 눈과 선관위 간에 마찰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선관위에 문의하고 답변드리겠다”며 “9일 예정된 본 투표와 개표까지 잘 마치도록 시민의 눈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선거관리위원회 건물 한편에서 시민들이 사전투표함을 지키고 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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