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정부가 새로운 경제정책방향을 제시하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경제력 집중 완화 방안을 밀어부치고 있지만, 대기업집단의 기업공개(IPO) 수준이 저조해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주요 정책수단으로 삼고 있는 소액주주의 경영권 견제, 스튜어드십코드 참여 확산 등이 모두 기업공개된 회사에만 한정되는데, 30대그룹의 기업공개 비율이 17%에서 답보 중이어서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대기업집단의 투명경영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공개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5일 각사 및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그룹의 기업공개 비율은 평균 17.5%에 그쳤다. 그 전년에 비해서도 거의 변동이 없다. 2015년 17.02%에서 0.48%포인트 올랐다. 이는 회사 수 기준이다. 자본금 기준으로 보면 공개비율은 53% 수준이다. 기업공개한 회사의 자본금 비중이 그만큼 막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본이 큰 소수 주력회사만 시장에 공개하고, 대다수 계열사는 정보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형편이다. 비공개 기업은 경영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면담 대상에 올랐던 15대 그룹으로 좁히면 기업공개 비율은 15% 수준(이하 회사 수 기준)까지 떨어진다. 그 중 최종 면담 대상에서 제외된 부영그룹의 경우 전체 22개 보유 회사 중 기업공개 회사가 ‘제로’다. 30대 그룹 중에서 기업공개 회사가 없는 집단은 부영이 유일하다. 면담에서 제외된 이유도 경영 투명성이 부실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대기업집단 중 첫번째로 제재를 받은 곳이 부영이다. 계열사 현황 자료를 14년간 허위로 작성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했다. 정보 공개에 소극적인 기업일수록 장부조작이 심하다는 의심을 낳는다.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 의혹으로 직권조사에 들어간 하림의 경우 기업공개 비율이 10% 정도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5년 전 아들 준영씨에게 계열사 올품의 지분을 물려준 뒤 내부 일감을 몰아준 의혹을 샀다. 올품의 자산규모는 10조5000억원으로 하림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기업공개가 되지 않은 회사다. 그동안 재계에도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총수일가 사익편취 사례는 정보 은폐 목적에서 주로 비상장 기업이 동원돼 왔다.
4대 그룹 중에서는 삼성그룹이 지난해 25.81%로 기업공개 비율이 가장 높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0.75%, SK그룹이 17.71%로 뒤를 이었다. LG그룹은 16.18%로 30대 그룹 평균보다 낮았다. 자본금 기준으로 보면 SK그룹이 44.39%로 30대 그룹 평균치를 밑돌았다. 주력 상장사 외에 자본이 비대한 비상장사들이 많음에도 기업공개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밖에 30대 그룹 중 GS(8.7%), 대우조선해양(7.14%), 미래에셋(7.32%), 한국투자금융(3.57%), 대우건설(7.14%) 등의 기업공개비율이 한 자릿수로 부진했다.
기업공개를 하면 외부 자금 조달이 쉬워져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영업으로 자금을 벌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업공개는 훨씬 빠른 경로다. 상장 기업이 되면 대외 신뢰도도 올라간다. 기업 이미지도 자동적으로 개선된다. 하지만 주요 경영사안 공시나 배당, 주주보호 등의 의무가 강화되는 게 기업공개를 꺼리는 이유다. 문제는 기업공개를 피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해 부당이익을 쌓는 것이다. 과거 재벌이 편법 상속을 위해 일가 지분이 많은 비상장기업에 일감을 몰아주고 막대한 상장차익을 거두게 해주는 등의 사례로 사회적 비난이 적지 않았다. ‘8·3조치’로 재벌의 사채를 탕감해준 박정희 정권에서도 당시 기업공개 수준과 일감몰아주기는 논란이 됐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벌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폐습을 지적하며 기업공개를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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