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차원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임시배치를 단행했지만, 그로 인한 정치·외교적 어려움에 봉착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는 ‘촛불혁명 배신’이라는 진보진영과 ‘눈치보기’라는 보수진영의 샌드위치 공세에 시달리고, 외교적으로는 중국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10일 청와대에 따르면 러시아 순방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특별한 일정은 잡지 않고 휴식을 취하며 국정현안들을 점검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사드 관련 후속 대책 등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지난 7일 사드 발사대 4기의 임시배치를 완료하면서 문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층이었던 진보진영은 “박근혜정부와 다른게 뭐냐”며 배신감을 토로하며 흔들리고 있다.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의 자문그룹 ‘10년의 힘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이름과 용모는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사드 배치도 그렇고, 전부 촛불 민심과 거꾸로 가고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지난 8일(금요일) 저녁 9시쯤 대국민 메시지를 내고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며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는 시간대에 전격적으로 나온 이 메시지는 청와대가 지금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라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메시지에서 ‘안보의 엄중함’을 3차례, ‘임시배치’라는 단어는 그보다 많은 5번 언급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후 지리멸렬하던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도 공세 수위를 올리고 있다. 사드 배치결정은 일단 환영하면서도 ‘임시’라는 단어를 문제삼아 “중국과 사드 반대진영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전술핵 재배치’ 공론화로 안보드라이브 가속화에 나섰다. 최근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사실상' 철회 결정은 대정부질문 등에서 안보이슈로 정부를 몰아치고 보수진영을 재정비하려는 속셈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중국의 반응 역시 심상치 않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드를 악성 종양에 빗대며 원색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 “북한이 더 위험해지면 한국도 더 위험해진다”는 막말수준의 논평도 선보였다. 시진핑 주석은 문 대통령의 통화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중국정부의 사드보복은 한층 강화되고 있다. 다음 달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까지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청와대 측은 국내적으로 여야 대표 회동이나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성 등을 강력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라는 대의명분으로 야당의 대국적인 협조를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지층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대통령의 추가 메시지가 나올지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일컬어지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문 대통령이라고 100% 다 잘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대통령을 그동안 신뢰해 왔다면 ‘지금 왜 저런 행보를 할까’ 한번만 더 생각해봐 달라”고 호소했다.
외교적으로는 문 대통령의 다음 주 미국 방문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오는 18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제72차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문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 관련 메시지를 발표하고 총회에 참석하는 주요국 정상들과 정상외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8일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정부의 사드 추가 배치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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