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공공기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른바 ‘적폐’ 기관장들에 대한 사퇴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장섰거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시기 임명된 기관장이 다수다. 특히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0월부터 정권교체 직전인 올해 4월 중 임명된 기관장들은 잔여임기에 관계없이 현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에 맞춰 교체가 예상된다.
먼저 한국·민주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7월 적폐 공공기관장 10명과 이들의 적폐행위를 공개하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 중 홍순만 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 이승훈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 4명은 사퇴했지만 유제복 코레일유통 사장,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 박희성 동서발전 사장 직무대행, 정영훈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이사장, 이헌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등 6명은 18일 현재까지 현직에 있다.
이들 중 교체 요구가 가장 높은 기관장은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이다. 김 사장이 퇴진 압박을 받는 이유는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측근 채용비리가 적발된 것 외에도 이사회 의결을 통한 성과연봉제 불법 도입, 경영위기 상황에서 호화출장 등 도덕적 해이, 노조 집행부 이메일 차단 등 부당노동행위, 직원들에 대한 상습적인 막말, 경영능력 부족 등 10여 개에 이른다.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 관계자는 “채용비리는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사안이고 부당노동행위는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사실로 인정된 내용”이라며 “노조의 일방적인 의혹 제기가 아니다. 이미 객관적인 사실들만 놓고 봐도 김 사장은 공공기관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옥을 매각할 정도의 경영위기 상황에서 전 직원이 임금을 자진 삭감할 때 본인은 직원이 아니란 이유로 동참하지 않았던 사람이 김 사장”이라며 “자기정당화에 연연하면서 오히려 노조를 적폐로 규정하고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양대 노총이 공개한 적폐 공공기관장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김 사장과 마찬가지로 감사원 감사에서 각각 채용비리가 적발된 백창현 대한석탄공사 사장, 우예종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비위행위가 적발된 정용빈 전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정하황 한국서부발전 사장은 최근 사의를 표명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황 총리의 직무대행 시기 임명된 공공기관장 중에는 노조파괴 의혹을 받고 있는 방희석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이 교체 대상 1순위로 지목된다. 기존 노조 조합원들을 새 노조에 가입시켜 노조를 와해시키는 데 사측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기존 노조의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기존 노조는 노동자 과반 노조로서 지위를 잃게 돼, 사측은 이들의 동의 없이도 노동자에 불이익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강제 도입된 성과연봉제를 환원시키는 문제도 차질을 빚고 있다. 공공노련 관계자는 “현재도 방 사장은 간부들을 통해 성과연봉제가 폐지되면 직원들이 급여상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 노조를 건너뛰고 개별적으로 성과연봉제 환원에 대한 동의서를 받고 있다”며 “기획재정부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탈법적인 수단으로 불법 도입된 성과연봉제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련 여수광양항만공사는 “새로운 제 2 노조 설립(17년 2월)은 현 사장 취임(17년 3월) 이전의 일로 전혀 무관한 관계”라며 “자유롭게 노조를 조직하고 가입할 수 있는 현행법상 사측이 노조를 지배하거나 개입하는 등의 부당행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공사는 “정부 정책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보수체계를 호봉제로 환원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절차 등을 질의했다”며 “고용노동부로부터 보수체계 변경시 과반수의 노조가 없을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전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통해야 한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공사는 이어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의견을 묻는 과정을 적법하게 추진했으며, 그 결과 총 근로자 107명 중 99명이 참여해 19명이 보수체계 환원(호봉제), 80명이 보수체계 환원 반대(현행 보수 체계 유지) 입장을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방 사장 외에 이양호 한국마사회 회장 등 황 전 총리가 임명한 공공기관장 22명이 모두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당시 탄핵소추 가결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돼 정권교체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황 전 총리의 공공기관장 인사는 임기제를 악용한 ‘알박기’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 송혜진 국악방송 사장, 이기우 그랜드코리아레저 사장 등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연루 의혹을 받는 기관장들과 성과연봉제 환원 지침에 불복하고 있는 기관장들에 대해서도 사퇴 요구가 거세다.
정권 초 수십명에 이르는 공공기관장이 무더기로 퇴진 압박을 받는 건 임명 단계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강황선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 운영위원회 등에서 객관적으로 전문성 위주로 채용을 실시해야 하는데 사실상 낙하산 채용이 가능하도록 방임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사람, 기관 운영에 대한 소신과 비전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임기 보장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탄핵정국에 임명됐거나 정권 공백기에 황 전 총리가 급하게 꽂아 넣었던 낙하산 인사들은 임명된 과정 자체가 문제”라며 “이와 별개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불법 도입한 성과연봉제에 대해선 폐기가 결정됐음에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거나 유지하고자 하는 기관들은 노동계 입장에서 적폐 기관장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월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공공대개혁을 위한 적폐기관장 사퇴촉구 1차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공공개혁을 방해하는 일부 공공기관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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