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DJ투컷: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다음에도 바로 공연이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체력 안배를 할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먹은 제 자신이 부끄럽고 파렴치한데요. 근데 여러분 보니까 그럴 수가 없겠더군요. 최고입니다. 여러분!
타블로: (숨 고르면서) 너가 체력 안배할 이유가 있냐?
DJ투컷: 그러니까 파렴치하다는 거에요. (폭소하는 관객들)
4일 저녁 7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열렸던 에픽하이의 9집 컴백콘서트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7집 수록곡 ‘New Beautiful’을 부른 후 한숨 돌리던 그들이 만담을 이어가자 관객들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투컷의 고백(?)처럼 이제는 무대 위를 몇시간씩 방방 뛰어도 혈기왕성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들은 또 그렇게 자신들의 ‘신체시계’에 맞춰 멋진 공연을 해내고 있었다. 청춘의 끝에 선 이들이 전하는 진솔함과 순수함이 이날 내내 공연장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에픽하이 9집 컴백 공연장 입구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전시관. 사진/권익도 기자
사실 그들의 진심 어린 향기는 입구에서부터 느껴졌다. 그들에 얽힌 ‘작은 전시관’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조그만 네모 유리관에는 ‘연애소설’ 가사를 적어내려간 타블로의 노트를 비롯, 피쳐링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폴라로이드 사진, 데뷔 전 데모곡들을 실제 녹음한 2002년 카세트 테잎 등이 진열돼 있었다. 팬들은 입장에 앞서 앨범 준비기간이었던 지난 3년, 그리고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의 14년을 그 진열품과 함께 추억할 수 있었다.
저녁 7시 정각이 되자 그 향은 점점 더 깊고 그윽해졌다. 5집 수록곡 'BE'의 서늘한 바람소리와 함께 15개의 큐브 속 LED 화면에는 지난 3년간 곡 작업을 위해 분투한 그들의 영상이 흘렀다. 이후 무대 가운데 놓여있던 육중한 피아노가 수직 상승하더니 큐브 속에서 세 사람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난 나이기도, 너이기도, 선이기도, 악이기도’ 타블로의 조그만 읊조림이 관객들의 함성과 뒤범벅되며 분위기를 달구기 시작했다.
LED 큐브를 뒤로 하고 노래 부르는 에픽하이. 사진/YG엔터테인먼트
“여러분! 우리 딱, 10년 전으로 돌아가 볼까요?” ‘Fan’의 전주와 함께 타블로가 외치자 이내 장내는 무아지경의 상태가 된다. 2007년 리드미컬한 후렴구에 맞춰 런닝머신춤을 추던 이들의 댄스가 재현되자 관객들은 웃으면서 함성으로 답했다. ‘Fan’외에도 이날 공연에선 9집 신곡들 사이 사이로 ‘Fly’와 ‘Paris’, ‘Love, Love, Love’ 등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곡들이 팬들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오며 그들을 향수에 젖게 했다.
“저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Fly’로 가장 처음 상을 받았을 때에요. 처음 1위 했을 때 마냥 기쁘고 즐거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울었어요. 여의도 고깃집이었는데 거기서 우리 셋 다 대성통곡했죠.”
랩핑을 하고 있는 에픽하이의 미쓰라. 사진/YG엔터테인먼트
DJ 투컷의 말에 타블로가 거든다. “에픽하이는 사실 이런 추억이 굉장히 많아요. 벌써 데뷔한지가 14년이고, 결성된지는 거의 15, 16년이 돼 가거든요. 그래서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도 우리의 옛 사진도 많이 봤어요. 이선웅, 최진, 김정식이었을 때의…그런 옛날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런 시절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냐?” 9집 ‘어른 즈음에’의 첫 소절이 시작되며 20대 시절 그들과 친구들 사진, 그리고 청춘이란 이름의 흔적들이 영상으로 유유히 흘렀다. ‘Fly’를 외치며 꿈을 좇던 그들 역시 이젠 청춘을 관조하는 무렵의 나이가 됐지만, 그들의 인간다움은 젊은 시절보다 더 따스하게 무대를 빛내고 있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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