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KT가 평창올림픽 준비 완료를 선언한 날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31일 오전 9시40분경 KT 경기도 분당 본사와 서울 광화문지사 사무실에 수사관 20여명을 보내 불법 정치자금 기부 혐의와 관련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은 지난해 말 KT 홍보·대관 담당 임원들이 일부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관계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경찰은 황창규 KT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여부와 통신 관련 입법 등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에게 기부금이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날 확보한 자료의 분석이 끝나면 관련 임원들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압수수색은 주요 임원들이 회사를 비운 상황에서 진행됐다. 이날 KT 광화문 사옥은 경찰이 들이닥치고 주요 방송사의 카메라들이 주차장 쪽 후문에서 촬영을 하면서 하루 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KT 주요 임원들은 같은 시간 강릉 올림픽파크에서 홍보관 개관식을 열고 5세대(5G) 통신 시범 서비스 준비 완료를 선언했다. 행사에는 황창규 회장과 오성목 KT 네트워크 부문장(사장)을 비롯해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이희범 올림픽 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검찰도 KT를 조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해 KT가 한국e스포츠협회에 낸 후원금의 뇌물성 여부에 집중하고 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한국e스포츠협회장 당시 기업들에게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협회의 이사사는 KT와 SK텔레콤,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세 곳이다.
KT 서울 광화문 사옥. 사진/뉴시스
이러한 검찰과 경찰의 압박은 황 회장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하고 있다. 황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지만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황 회장의 임기는 2020년 정기주주총회까지 3년간이다. 하지만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황 회장의 거취에 대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사실상 주인이 없는 기업으로 여겨지는 KT는 과거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수장이 교체됐기 때문이다. 현재 KT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10.94%의 국민연금공단이다. 황 회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그만 둘 생각이 없는가"라는 직접적인 질문도 받았다. 당시 황 회장은 "여기서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KT 노조에서도 황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박철우 KT민주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황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고 이번 정치후원금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KT의 이미지는 추락했다"며 "황 회장은 즉각 퇴진해야 하며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KT민주화연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참여연대·희망연대노조 등이 참여한 단체다.
황 회장의 퇴진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실적에서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KT의 2016년 연간 영업이익은 1조4400억원으로, 2011년 이후 5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5G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 분야에서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황 회장도 각종 현안들을 적극 챙기며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황 회장은 이달초 신년사를 통해 "KT가 평창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역량과 5G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글로벌 플랫폼 선두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감염병 확산 방지 플랫폼'을 제안했다. 황 회장은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와 리즈킹고 유엔 글로벌콤팩트(UNGC) 사무총장 등을 만나 프로젝트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황 회장은 2월에는 평창올림픽 일정을 마무리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건너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전시장을 찾을 예정이다.
KT 관계자는 "압수수색 중인 것은 맞다"며 "수사 중인 상황이라 언급할 내용이 없으며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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