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지난달 26일 한국블록체인협회가 공식 출범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협회 출범 과정에서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던 김진화 이사는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서 가상화폐 열풍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혁명을 거대한 쓰나미에 비유했다. 몸으로 막으려다간 파도에 휩쓸릴 뿐이다.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고, 그렇기에 준비도 필요하다.
투기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과도기적 현실에서 블록체인협회는 나름대로 역할을 찾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자율규제안을 만들어 투기판이 돼버린 가상화폐 시장을 건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단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정부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김 이사는 강조하고 있다. 협회의 역할은 제한적인 만큼, 입법과 규제를 통해 장기적으론 가상화폐 시장을 제도권에 편입시켜야 한다. 억지로 틀어막는 것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하 일문일답.
지난해 12월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암호화폐 거래에 관한 공청회에서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이사(당시 협회 추진위원회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 가상화폐 시장을 어떻게 보는가.
정부가 직접 개입해 인위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형태다. 신규 계좌 개설을 제한하고, 그조차 신규 거래소엔 기회도 안 준다. 현재까진 정부의 의도대로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글로벌 시세가 올랐을 때, 그 영향으로 국내 가상화폐 시장이 왜곡된 방식으로 폭발할 수 있다. 계좌 매매가 성행할 수도, 국내 시세에 더 큰 거품이 낄 수도 있다.
-그런데 가상화폐 거래 자체가 거래자들에겐 ‘투자’지만 밖에선 ‘투기’로 인식되고 있다.
투기와 투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표현처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아니냐. 여윳돈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사는 건 투기고 대차 거래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 몇 배의 레버리지 효과를 보는 건 투자냐. 일시에 거래량이 급증하거나 시세 거품이 과하게 끼었다고 판단될 때 이를 진정시키는 것은 좋다. 문제가 있는 거래소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투자 방식과 관계없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거래를 투기라고 전제하고 진입을 막는 건 자유시장경제 원리에도 어긋난다.
-가상화폐 제도화에 반대하는 쪽에선 블록체인기술을 육성하는 것과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하는 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블록체인은 하나의 프로토콜이다. 기존의 자본시장에서 기업들은 프로토콜 자체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자금을 돈으로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HTTP나 TCP·IP만 봐도 군사적 목적이나 정부 펀딩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 프로토콜 위에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응용서비스가 얹어지면 그때서야 기업의 투자가 이뤄진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프로토콜상에서 거래장부로 기입되는 코인이 발행되고, 그 코인이 거래됨으로 인해 프로토콜 자체에 투자가 이뤄진다. 이 투자를 통해 블록체인기술도 발전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이라고 해서 기술에 대한 투자를 막는 건 과거 인터넷과 이메일 서비스를 막던 것과 다를 게 없다.
-가상화폐의 화폐로서 활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국내에선 위메프가 가상화폐 결제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그건 하나의 마케팅이라고 본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현재까지 발행된 코인들은 그 자체가 소비자 화폐나 결제수단으로 사용되기 어렵다. 앞으로 블록체인 기반 위에 점점 더 다양한 코인들이 개발되면 그 과정에서 결제수단으로 활용 가능한 코인들도 나오게 될 것이다.
-가상화폐의 안전성도 끊임없는 논란거리다. P2P가 아닌 거래소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면서 해킹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거래소 해킹 사태가 발생했고.
거래소는 과도기적 존재다. 블록체인기술이 아닌 기존의 웹기술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제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기존 웹기술을 쓰는 온라인 증권사들은 금융감독원이 들여다본다. 가상화폐가 탈중앙 사회의 산물이라고 해도, 거래소에는 원화와 가상화폐가 함께 예치돼 있다. 따라서 중앙의 감독도 필요하다. 일본만 해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재산상 가치를 지닌 결제수단으로 받아들였다. 미국과 우리나라도 법원에선 가상화폐를 재화로 인정했다. 받아들여야 규제와 관리도 가능하다. 가상화폐 시장이 규제 사각지대에 노출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이 보게 된다.
-그 제도화라는 게 간단치 않다. 손봐야 하는 법률도 많고, 입법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미 기존 법률 개정안이나 별도의 특별법 제정안이 발의돼 있다. 어떤 법률로 어떻게 관리할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제도화 이전까진 협회를 중심으로 자율규제도 가능하다. 가상화폐 상장 절차를 까다롭게 해 검증되지 않은 소위 ‘잡코인’ 거래로 인한 피해를 막고, 특정 화폐를 상장하는 조건으로 그 화폐를 발행한 주체와 어떤 형태로든 거래를 한 거래소에 대해선 폐쇄도 가능하다. 단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예전엔 민간도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돼 있었는데, 금융위원회가 갑자기 입장을 틀어버리면서 민간의 입장이 정책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사실 작년 초에만 제도 개편을 시작했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하진 않았을 텐데.
그동안 정부가 가상화폐 열풍을 무시해오기도 했고, 글로벌 트렌드도 따라가지 못 했다. 바탕은 책임지기 싫어하는 관료들의 습성이 아닐까 싶다. 현재 성과평가 시스템 하에서는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와도 제때 도입하기 어렵다. 이번에도 진작에 민과 관이 함께 대책을 마련하고 제도 개편을 추진했어야 했는데, 손 놓고 있다가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니 가상화폐 시장을 단순 도박판으로 규정하고 졸속으로 대책들을 발표해 문제가 꼬여버린 것 아니냐. 그나마 선제적으로 블록체인기술을 활용하려 했던 금융기관들도 지금은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앞으로 블록체인기술이나 가상화폐 시장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나.
기술이라는 건 쓰나미와 같다. 몸으로 버텨 막으려다가는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또 판도라의 상자처럼 한 번 열면 되돌릴 수 없다. 블록체인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기술적으로 계속해서 진보할 것이다. 1997년엔 텍스트조차 깨졌던 인터넷도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재 수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포르노 천국이 될 것이라며 인터넷도 막고 이메일도 막았었다. 또 아이폰이 개발되던 시기엔 우리나라를 2년간 IT 갈라파고스로 만들었다. 그 결과가 어땠나. 정부가 그때의 교훈을 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블록체인 전도사’로도 불릴 만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처럼 창업가를 존경하는 것까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관점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하다고 해서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건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회사를 매각한 뒤 기술과 산업을 알리는 게 인권까지 침해받을 정도의 잘못인가. 일부에선 가상화폐 시장을 도박판으로 이야기하면서 바다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그 트라우마 때문에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가상화폐를 억누르려 한다면 그건 아마추어라고 생각한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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